[횡설수설/이진]박정희 동상 역풍의 진원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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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군사정변 3년 뒤인 1964년 서울 남대문과 옛 중앙청 사이 녹지대에 사람 키만 한 석고상 37개가 죽 들어섰다. 38세의 김종필 민주공화당 의장이 기릴 만한 애국선현들이라며 직접 선정한 위인들이었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부터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까지 포함됐다. 하지만 서울대 이화여대 홍익대 서라벌예대 학생들이 만든 습작 수준의 석고상은 두 달 만에 비바람에 퇴색되거나 파손돼 흉물로 전락했다. 철거하라는 여론이 들끓어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석고상에 포함됐던 이순신 장군은 4년 뒤인 1968년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 높이 7m의 동상으로 다시 등장했다.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장’을 맡은 김종필 의장이 앞장섰고 자금은 박정희 대통령이 냈다. ‘일본이 가장 무서워하는 인물’을 고르라는 대통령의 지침이 선정 기준이었지만 조국 근대화에 온 국민이 매진하길 바라는 정권의 의도가 녹아들었다. 동상이 쥔 칼의 위치, 갑옷 등이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는 시비는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좌상 뒤에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을 세울 때라고 주장한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 현대 정주영 회장 동상도 추가하면 건국과 근대화의 위인들을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제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출범해 광화문광장에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세우자는 운동에 나섰다. 탄생 100년이자 현대사를 긍정적으로 서술한 국정 역사교과서가 보급되는 2017년을 ‘박정희 바람’의 기점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추진위원장인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박정희 대통령님을 기리는 동상 하나 떳떳하게 세우지 못하는 현실은 이제 극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경제성장의 공(功) 못지않게 장기독재라는 과(過)도 뚜렷하다. ‘박정희 2.0’인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하야 요구까지 나오게 한 것은 아버지 재평가에 막대한 부담이다. 박 대통령의 실패가 박정희 동상 반대 여론을 부추기는 상황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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