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빨대’에 휘둘린 문체부… “넌 무슨 라인?” 뒤숭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4일 03시 00분


[최순실 게이트]‘최순실 국정농단’에 정부부처 만신창이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인사와 정책, 예산 등에 전면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총리실, 기획재정부까지 이른바 최순실 농단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조직 내에서 최순실 차은택이 관련된 업무를 주로 수행했던 간부와 그렇지 않은 구성원 사이의 갈등도 드러나고 있다.

 사실상 비선 실세의 ‘놀이터’가 된 문체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3일 기자가 찾아가 본 세종시 문체부 청사는 적막감에 휩싸였다. 한 공무원은 “직원들 사이에서 누가 ‘○○라인’이라는 이야기가 돌아 한마디로 아수라장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최근 “모든 의혹사업에 대해 전면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차은택 씨가 주도했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지원해왔던 문화콘텐츠산업실,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관련 부서, 김종 제2차관이 담당한 체육정책실 등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 직원은 “문화융성이 국정 4대 기조 중 하나니까 안 걸리는 부서가 없다. 핵심 사업부서들은 다 같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몇몇 간부는 최순실 사태 이후 논란의 중심에 있다. 2014년 12월 국회 교문위에서 김종 차관에게 “여야 싸움으로 몰고 가야”라고 쓴 쪽지를 건네 물의를 빚은 우상일 예술정책관(당시 체육국장)은 김 차관의 한양대 인맥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이날 청사에서 만난 우 예술정책관은 “공무원은 아무 판단 없이 ‘개돼지’처럼 윗사람 지시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터무니없지 않으면 명령을 실행해야 하는 존재”라며 “어쨌든 큰 그림을 최순실이 그렸다고 하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기재부 국장 출신인 윤태용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2014년 유진룡 전 장관 면직과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 경질 이후 임명됐다. 윤 실장은 “콘텐츠산업 활성화를 돕기 위해서 기재부에서 왔을 뿐 최순실은 모른다”고 부인했다.

 국회 예결위에서 야당은 ‘최순실 예산’으로 파악된 5200억 원의 사업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중 문체부 예산은 3200억 원대에 달한다 이날 국회에서 만난 한 문체부 간부는 “어차피 삭감될 것이기 때문에 의혹사업은 ‘자진납세식’으로 털고가는 게 낫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문체부의 한 직원은 “문체부가 전문성도 필요 없고 ‘빨대를 꽂기 쉬운 부서’로 인식되는 데는 우리 스스로도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권이나 장관이 바뀌면 아무나 ‘점령군’처럼 내려오고 직원들이 좌천되는 일이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국정 기조가 ‘문화융성’ ‘창조경제’라고 하니까 따랐는데, 알고보니 최순실 차은택이 기획한 것이라니 업무담당자로서 심하게 울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뿐 아니라 다른 정부부처에서도 최 씨가 고위급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중순경 국무조정실 실장급 인사에 1순위로 추천된 B 국장이 되는 것으로 사전 조율이 이뤄졌음에도 청와대가 3순위인 A 국장을 낙점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일면식도 없는 A 국장을 알은체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인사 당시에는 정확한 배경을 몰랐지만 최근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비선 실세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지난해 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정부기관장 인사 때 해당 기관은 2명의 후보군을 청와대에 올렸지만 청와대는 당초 후보군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민간인 C 씨를 내려 꽂았다. 발탁 당시에는 박 대통령의 ‘수첩 인사’로 표현됐지만, 지금은 ‘비선 실세 인사’라 불리고 있다.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선임 과정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김정은 kimje@donga.com / 세종=이지훈·손영일 기자

#최순실#박근혜#재단#비리#청와대#문체부#국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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