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사회탐구]막돼먹은 순실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5일 03시 00분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참 밸난(별난) 여자였다.’ 최순실 정유라 모녀를 사우나에서 가까이서 지켜봤던 세신사의 증언은 핵심을 찔렀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체불명의 때때옷을 입혀놓고 본인과 딸은 명품을 휘감고 다녔다.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에서 3만8000원짜리 구두를 살 때 72만 원짜리 프라다 구두를 신고 다녔다. 거주 공간 계단에 마련된 신발장을 가득 채운 값비싼 구두 컬렉션은 모녀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천박한 내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염치없는 아줌마가 휘두른 세상

 청와대 행정관을 몸종 부리듯 하고 도피 중인데도 덴마크 레스토랑에서 “김치를 내 오라”고 소란을 피우고 청와대 관저에서 밥을 차리라 하고, 딸의 학교를 찾아가 교수와 교사를 위협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막장 드라마의 에피소드다. 오죽하면 막장 드라마의 여왕 임성한 작가는 반성하라는 우스개가 나올까.

 최순실이 ‘별난 여자’에 머물렀다면 비선이긴 해도 실세라고 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집요함이 있다. 딸 정유라를 승마선수로 키우는 과정에서 그는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법령이건 사람이건 제거하고 필요한 자원을 끌어온다. 지도교수를 내쫓고 촌지를 뿌리고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낸다.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을 축출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정유라를 위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 셈이니 딸이 공주병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으니 자신을 닮아 절제를 모르는 딸이다. 무슨 일을 저질러도 부모가 해결해 준다는 학습효과가 있는 딸은 고3 학생으로서 아이를 낳겠다고 선언한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최순실은 딸에게 이화여대 합격증을 만들어주고 승마도 훈련하고 이목을 피해 아이도 키울 수 있도록 독일에다 근거지를 마련한다. 최순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면 딸을 봐야 한다. 딸이 승마를 하지 않았더라면 최가 문화나 체육 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국정 농단의 양상도 달랐을 것이다.

 세상에는 최순실처럼 사기성이 농후한 사람이 없지 않지만 활개를 치고 살긴 힘들다. 아무리 명품을 휘감아도 그런 사람의 영혼은 악취를 풍긴다. 처음에 최순실의 위세와 금력에 고개를 조아리며 주변에 몰려들던 사람도 알면 알수록 ‘이건 아닌데…’라는 걸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최가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끌어들인 고영태나 이성한 같은 사람마저도 몰래카메라를 찍거나 대화 내용을 녹음하며 추후에 닥칠 위험에 대비를 했고 누군가는 최의 흔적이 담긴 태블릿PC를 언론에 전달했다.

박 대통령, 그렇게 사람을 못 보나

 박 대통령은 어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최순실이 이런 분탕질을 치는지 몰랐다는 말이다. 알았더라도 문제지만 어찌해서 대통령은 이렇게 막돼먹은 인간을 몰라봤을까. 허탈할 따름이다. 박근혜 정부의 그 숱한 인사 참사도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대통령의 판단력 부재에서 비롯됐음이 최순실 게이트가 증명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최순실#정유라#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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