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정권초 ‘문화가 있는 날’ 지정 등 인문학-공연-순수예술 지원 초점
김종덕-김상률 등 ‘차은택 사단’ 등장뒤 융·복합 콘텐츠 집중… 예산 급팽창
예술계 “무대에 영상만 틀면 지원금”
“역대 정부 최초로 정부의 국정기조에 ‘문화융성’이 포함되자 문화체육관광부가 무척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여성문화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됐던 김태훈 현 문체부 관광정책관은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문화융성’이 포함됐을 때 문체부 내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당시 인수위에 참가했던 한 인사는 “인수위에서 창조경제는 원래 정보통신 관련 산업 분야에서만 논의됐는데, 취임사에서 문화와 창조경제가 융합된 ‘문화융성’이 국정기조로 택해지는 것을 보고 누군가 비선에서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융성은 급조된 국정기조였기 때문에 개념조차 불분명했다. 이 때문에 당시 모철민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유진룡 문체부 장관과 함께 문화융성의 개념부터 세부 정책까지 총괄해서 채워 넣는 역할을 맡았다. 2013년 7월에는 문화융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문화융성위원회’가 출범했고, 이듬해 1월에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했다.
정권 초기의 문화융성 정책은 연극, 무용, 출판, 학술 등 순수예술까지 다 포함된 개념이었다. 문체부에는 ‘인문정신문화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7월부터 문화융성의 개념은 ‘융·복합 콘텐츠 산업’ 지원으로 크게 변질된다. 유 전 장관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와 관련된 승마협회 비리 조사 문제로 경질된 시기와 겹친다. 같은 해 8월 최 씨의 측근으로 CF 감독인 차은택 씨가 문화융성위원으로 위촉됐다. 최 씨가 예산 400억 원 규모의 문화창조융합센터 계획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후 비선 실세가 문화융성을 각종 이권을 챙기는 ‘놀이터’로 만들기 위한 인적 조치가 속도를 낸다. 8월에는 차 씨의 홍익대 대학원 지도교수인 김종덕 장관이 취임하고, 12월에는 차 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56)가 대통령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됐다.
1기 문화융성위 위원이었던 중견 배우는 “융성위가 초반에는 대통령도 참석해서 대단한 회의처럼 생각했는데 곧 껍데기만 있다는 게 드러났다”며 “그저 밥 한번 먹고 오는 자리였다. 결국 비선 실세들이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 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비선 실세의 문화융성은 차 씨가 2015년 4월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임명된 이후부터 현 정부의 문화융성 예산도 본격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문화창조벤처단지, 문화창조아카데미, K팝 아레나 등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는 2019년까지 7000억 원의 국고 지원이 계획됐다.
정부가 국민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늘렸다고 홍보해 온 ‘문화가 있는 날’도 대통령의 ‘찬조 출연’으로 비선 실세들이 세 과시를 하는 행사로 변질됐다. 2014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가 있는 날’에 차 씨가 연출한 뮤지컬 ‘원데이’를 관람하고, 같은 해 11월에는 역시 차 씨가 개입해 만든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했다.
연출가 윤호진 씨는 “김종덕 장관 취임 후 ‘융·복합’이 유독 강조되면서 수준 떨어지는 공연도 무대에 영상만 틀면 지원금을 주길래 뭔가 돈이 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체부의 전직 고위 관료는 “문화융성의 기초는 인문학, 학술, 연극, 무용 등 순수예술의 활성화와 가장 직결되는 부분”이라며 “차은택이 실세가 되면서 순수예술은 도외시되고 문화콘텐츠 산업만 강조되는 기이한 구조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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