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헌법학자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80)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를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 “현행 헌법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있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를 전격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13분간 회담을 갖고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해주신다면 그 분을 총리로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선 내각 통할권의 ‘범위’가 논란으로 떠올랐다. 총리 권한 행사의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것. 이와 관련해 허영 교수는 9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야당이 ‘대통령의 발언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식의 정치 공세를 하지 말고 이제는 만나야 된다”면서 “야당도 헌법 테두리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수권 정당으로서의 자세”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 의장과의 회담에서 총리의 권한에 대해 ‘실질적인 내각 통할’이라고만 언급하고, 구체적인 권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 허 교수는 ‘실질적인 내각 통할’의 의미에 대해 “(박 대통령이) 모든 걸 총리에게 맡기겠다고 하면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국정을 논의하면 된다”면서 “총리가 지시도 하고, 보고도 받고 통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모든 권한이 사실상 총리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지금처럼 사실상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국정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실질적인 내각 통할’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국무위원 제청권은 총리에게 있지만 현재까지는 제대로 행사된 적이 없다”면서 “이것 자체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다. 제청권을 충분히 활용하게 된 총리는 실질적인 국무위원 인사권을 갖게 되고 그렇게 되면 총리의 국정 통할권이 살아난다. 사실상 총리에 의해 발탁된 장관들이 총리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 86조 2항에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책임총리가 가능하느냐는 물음엔 “현행 헌법에서 국무회의는 국가 정책을 심의해서 대통령에게 건의하면 대통령이 결정하게 돼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궐위(어떤 직위나 관직 따위가 빔)는 아니지만 사고로 인해 정상적인 직무 수행을 못 하는 것에 해당되니 직무를 위임할 수 있다.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권한을 어디까지 총리에게 위임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이나 외교 등에서 상징적 존재로 남고 실질적 권한은 총리에게 줘야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의원내각제 개헌을 도입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좋은 모멘텀(계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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