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Topic]우병우의 길, 최재경의 길, 윤석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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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1월 9일 14시 30분


11월 6일 검찰에 출석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가족회사의 횡령 의혹 등을 묻는 기자를 쏘아봐 논란이 됐다. 사진공동취재단
11월 6일 검찰에 출석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가족회사의 횡령 의혹 등을 묻는 기자를 쏘아봐 논란이 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칼잡이’ 우병우가 마침내 칼을 내려놓았다. 아니, 빼앗겼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검찰을 좌지우지했던 그가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그는 두 달여 전 횡령과 직권남용 등 각종 비위 혐의로 고발됐다. 그를 특별히 수사하겠다며 발족한 검찰 특별수사팀은 그의 집과 사무실, 휴대전화에 대해 압수수색도 하지 않은 채 (혹은 못한 채) 시간을 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에야 그를 소환했다. ‘최순실 덕분에 우병우를 조사하게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하다.

박근혜 정부는 유난히 민정수석을 자주 바꾸었다. 우병우만 해도 4번째였다. 그의 후임자는 같은 검사 출신 최재경. 특수통의 대명사 최재경은 우병우를 능가하는 칼잡이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는 민정수석 5명을 모두 검사 출신으로 임명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박 대통령이 왜 그토록 검사 출신을 중용했는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민정수석 인사에도 최순실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부가 유난히 검찰 장악에 신경을 썼다는 방증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얘기는 당대 칼잡이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이다. 우병우와 최재경, 나머지 한 사람은 SNS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 후보로 거론되는 현직 검사 윤석열이다. 이 정부 초기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을 이끌었던 그는 좌천성 인사로 수년간 한직을 맴돈다.

2014년 7월 유병언에 대한 부실수사 책임을 지고 검찰을 떠날 당시의 최재경 민정수석.
2014년 7월 유병언에 대한 부실수사 책임을 지고 검찰을 떠날 당시의 최재경 민정수석.
순서대로, 우병우 얘기부터 해보자. 그가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라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검사라는 얘기는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노무현 수사 경력만큼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그 사건이 그의 검사 이력과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과장이었다. 특수통 검사들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이 자리에서 그는 운명적인 수사를 하게 된다. 전직 대통령 소환과 조사. 과거 몇몇 선택받은 검사만이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이 그에게도 깃든 것이다. 칼잡이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전직 대통령이 죽음으로써 항거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감옥에 간 전두환·노태우와 달리 노무현은 자살을 택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그의 칼은 칼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노무현의 저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련자들은 모두 검찰을 떠났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물러나고 수사 책임자인 이인규 중수부장이 사퇴했다. 수사를 조율했던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과 주임검사였던 우병우도 오래 가지 못했다. 수사 상황을 ‘생중계’해 피의사실공표죄로 고발당하기까지 했던 홍만표는 대검 기획조정실장 재직 중이던 2011년 사표를 냈다. 검사들의 불만을 샀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책임지겠다는 게 사직의 변이었다. 고액 수임 변호사로 변신한 그는 지난 6월 탈세 혐의로 구속됐다. 우병우는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두 번째 탈락하자 옷을 벗었다. 엘리트 의식과 자존심이 강한 그에게 연속적인 승진 탈락은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다.

2013년 12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항명파동과 관련해 법무부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는 윤석열 검사.
2013년 12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항명파동과 관련해 법무부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는 윤석열 검사.
2015년 4월 우병우는 기자 몇 명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민정수석에 임명된 지 3개월 지났을 때였다.

“저도 이인규 선배만큼 억울했죠. 아니, 더 억울했지. 그래도 이 선배는 중수부장까지 했지만 저는 검사장도 못했으니. (검찰이) 일만 있으면 저를 불러서 부려먹고는 승진은 다른 놈 다 시켜주고. 검찰총장처럼 한 자리뿐이면 이해하지만, 한 기수에 10명을 시켜주면서 저만 안 시켜주고. 1차에 안 시켜준 것만 해도 열 받는데 2차까지 안 시켜주니까,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했어요. 일만 시켜먹고 승진 때는 빼고. 그게 더 억울하지.”(신동아 2016년 9월호)

사석에서 편하게 얘기한 것인 만큼 그의 생각과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검찰에 한을 품고 있다. 전직 대통령 수사에 대한 공을 인정받기는커녕 외려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총대를 멨는데 팽 당했다는 인식이다. 그의 강도 높은 신문은 노무현에게 큰 모욕감을 안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수사가 중단된 후 신동아 기자이던 나는 그를 대검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다. 차갑고 날카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박연차의 진술 외에 노무현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있느냐”고 묻자 약간 낯빛이 변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유죄 증거가) 많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다. 시간이 흐르면 다 드러날 것이다.”

민정수석이 된 후 그는 한풀이라도 하듯 친정인 검찰을 주물렀다. ‘우병우 라인’이니 ‘우병우 사단’이니 하는 신조어가 탄생하고, 검찰 간부들이 총장과 민정수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번에 검찰이 우병우를 소환하고 조사하는 과정에 드러낸 희귀한 저자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치자. 어차피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자리이니 검찰이나 국정원, 경찰에 자신의 인맥을 심은 것은 소소한 권력욕이나 인지상정쯤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

문제는 따로 있다. 그는 앞서 소개한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검사장도 안 된 저를 청와대에서 쓰겠다고 한 것은 (검찰의 시각에선) 상식적으로 안 맞는 거죠. 이렇게 비서관, 수석비서관이 될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안 억울해 했겠죠”라고 말했다. 검사장도 못 된 ‘미천한’ 자신을 민정비서관에 이어 민정수석이라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앉혀준 대통령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한 게 그의 비극이었다. 출세욕과 공명심이 강한 엘리트주의자 우병우 개인의 캐릭터 탓이겠지만, 상사에게 절대 복종하는 검찰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충성은 위험하다. 그 자신은 대통령과 나라를 위한 일을 했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대통령과 나라를 망치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그의 죄는 미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혼군(昏君)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것이다. 잘못을 알면서도 간언하거나 바로잡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가족회사의 자금을 빼돌렸다는 횡령이나 아들의 운전병 특혜 의혹과 관련된 직권남용은 가벼운 범죄일지 모른다. 망국(亡國)의 길을 걸으면서 우국(憂國)의 길을 걷는다고 착각하다 보니 정도(正道)에서 벗어났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도 없었다. 그가 마땅히 직무유기로 수사 받아야 할 이유다.

우병우의 길이 단순한 데 비해 최재경의 길은 복잡하다. 그는 검사들 사이에서 안대희 이후 최고의 특수통으로 추앙받았다. 실력과 인품을 겸비했다는 평을 듣는 그가 무너져가는 ‘여왕의 나라’의 퀴퀴한 왕실로 들어간 데 대해 어리둥절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 재승박덕(才勝薄德)의 우병우와 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선지 그가 현 정부 실세 최경환 전 부총리의 고교 후배라거나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친조카라는 사실은 별다른 흠이 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BBK 수사 이후 달라붙은 ‘정치검사’ 꼬리표는 별도로 따져봐야 하겠지만.

비록 사법시험 두 기수 후배의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그의 명성이나 실력이 우병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검찰 재직 시 그가 거친 자리나 직위는 우병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승진과 보직에서 동기들 중 선두주자였던 그는 특수부 검사들의 꿈인 대검 중수부장을 지냈다. 그가 이명박 정부 말기 중수부를 폐지하려 한 검찰총장(한상대)을 들이받지 않았더라면, 세월호 사건 당시 유벙언에 대한 부실수사 책임을 지고 인천지검장에서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언젠가 검찰총장에 올랐을 거라는 게 검찰 안팎 중론이다.

스타일로 비교하자면, 우병우는 단검이고 최재경은 장검이다. 성격의 차이이고 무게감의 차이다. 우병우가 예리하다면 최재경은 선이 굵다. 우병우가 까칠하고 깐깐하다면 최재경은 온화하고 대범하다. 우병우에 대해선 호불호가 뚜렷하지만, 최재경은 두루 원만하다. 그래서 정치검사 시비에도 검찰 내에서 최재경을 깎아내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특수통 검사들 사이에선 우상과 같은 존재다. 그에 대한 신망은 ‘국민 중수부장’ 소리를 들었던 심재륜이나 ‘국민검사’ 안대희에 버금간다. 오랫동안 검찰을 취재했던 나는 그의 후배 검사들로부터 아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를 칭송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혹자는 그의 인기 비결을 능력보다는 원만한 대인관계에서 찾는다. 그는 말과 글 못지않게 태도가 반듯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를 오랫동안 알아온 나 또한 그의 능력과 별개로 그의 인품의 무게를 인정한다. 그는 자신과 인연을 맺은 후배들의 인사를 잘 챙겼다. 선배나 상사에겐 깍듯했다. 그에게 ‘최고 특수통’이니 ‘차기 검찰총장’이니 하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데는 출입기자들과의 관계가 좋은 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입이 무거운 편이나 정보에 목마른 기자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적정선에서 수사내용을 알려주고 확인해줌으로써 기자들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줬다.

그는 또 의리를 중시한다. 2012년 중수부장 재직 시 다단계업자와 기업으로부터 10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둔 김광준 검사에게 수사 관련 조언을 했다가 화를 입은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김광준은 그의 서울대 법대 동기로 친구 사이였다. 당시 한상대 총장은 이를 문제 삼아 최재경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가 중수부 폐지 문제로 역공을 받아 사퇴하게 된다. 2인자인 채동욱 대검 차장 등 상당수 대검 간부가 최재경의 ‘항명’을 거든 게 결정적 원인이었다. 최재경도 사의를 나타냈으나 주변의 만류로 접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최재경에게 반골 이미지를 덧씌운 이 사건은 그의 ‘인간적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회자된다.

의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매특허다. 의리를 뒤집으면 배신이다. 박 대통령은 유난히 의리와 배신에 집착하는 성격이다. 맹목적 의리와 맹목적 충성은 닮았다. 합리보다는 직관,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최재경의 길이 우병우의 길과는 다른 각도에서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법무연수원 석좌교수였던 최재경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조선일보에 고정 칼럼을 썼다. 지난 4월 18일 조선일보에 실린 그의 칼럼은 그의 인생관을 잘 보여준다. 제목은 ‘미야모토 무사시-검사의 마음’. 칼럼에서 그는 일본의 검성(劍聖) 미야모토 무사시의 삶과 철학을 소개하면서, 무사시가 남겼다는 ‘독행도(獨行道)’라는 글의 몇 구절을 인용했다. ‘내 한 몸은 가볍게 여기고 세상을 중하게 여긴다’ ‘평생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목숨을 버릴지라도 명예와 자긍심은 버리지 않는다’ 따위다. 최재경은 이 인용구 뒤에 ‘홀로 외롭게 걸어가며 추구했던 진정한 무사의 길! 그 삶의 결정(結晶)에서 받는 울림이 크게 느껴진다’라고 적었다. 그가 일본 무사도의 최고봉이라는 무사시에 자신을 투영했음을 알 수 있다.

무사 정신엔 양면성이 있다. 불의와 악을 처단하고 정의를 세우는 의인의 이미지가 있는 반면 주군에 대한 의리와 충성심에서 세상의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고 산화하는 맹목성과 무모함이 있다. 최재경은 합리적 성품의 소유자다. 그럼에도 중수부 폐지를 막겠다며 주군인 검찰총장을 공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과도한 조직이기주의와 저돌적 면이 있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참지 못하는 것이다. ‘목숨을 버릴지라도 명예와 자긍심은 버리지 않는다’는 무사시의 무사도와 일맥상통한다. 위기의 정국을 돌파할 최적의 구원투수라는 보수층의 기대감과는 별개로 그의 길이 혼미해 보이는 이유다.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가 배출한 음지의 스타 검사다. 뒤늦게 사시(33회)에 합격한 탓에 최재경(27회), 우병우(29회)의 후배지만, 나이는 더 많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특수통 코스를 밟으며 잘 나가던 검사였다. 대검 중수부 2과장과 1과장을 연달아 맡고, ‘특수부의 꽃’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쳤다. 우병우에게 노무현 수사가 그랬듯이, 2013년 정국을 뒤흔든 국정원 댓글사건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윤석열은 청와대와 법무부가 적당히 처리하기를 원했던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한 죄로 좌천당했다. 든든한 버팀목이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그해 9월 혼외자 문제로 사퇴한 후 댓글사건 수사는 좌초 위기에 놓였다. 국정원 직원들은 소환에 응하지 않았고 검찰 지휘부도 미적거렸다. 윤석열은 상부 보고 없이 국정원 직원을 체포했다는 이유로 수사팀장에서 해임됐다. 2013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를 문제 삼자 그는 “외압을 받아 수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고 폭로해 검찰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검찰 지휘부가 사실상 수사를 방해했다는 취지의 ‘양심선언’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팬클럽이 형성됐다.

그가 쫓겨난 후 수사는 중단됐고, 수사팀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해 12월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사유는 보고 누락. 이후 한직인 고등검찰청으로 옮겨갔다. 대구고검에서 2년을 근무한 그는 올 초 다시 대전고검으로 발령 났다. ‘보복성 인사’라는 얘기가 나왔다. 2회 연속 고검 발령은 ‘검사장 승진을 포기하라’는 메시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4일 대국민 2차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다. 그에 따라 “윤석열을 특검에 임명하라”는 SNS 여론이 실현될지 관심을 모은다. 국감장 폭로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그에게 여러 차례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명예회복이 중요하다”며 거절했다.

지지자들은 그를 임은정 검사와 더불어 ‘정의로운 검사’의 표상으로 칭송한다. 임 검사는 2012년 반공법 위반 재심사건 재판에서 상부 지침과 달리 무죄를 구형해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 징계무효소송을 내 승소했으나 2015년 검사적격심사대상에 회부돼 또 다시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윤석열은 지지자들이 자신을 ‘투사’로 떠받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내게도 “나는 정의로운 검사가 아니며 그냥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의 영입 제의에 대해선 “지금 열심히 근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검찰에서) 할 일이 많다”고 선을 그었다.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국감장 발언은 널리 화제가 됐다. 채동욱에 대한 충성심을 캐묻는 여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나도 이 부분이 궁금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알려진 바와 달리 채 총장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라며 자신을 채동욱 라인으로 분류하는 것을 경계했다.

윤석열은 기자들 사이에서 대체로 강직한 검사라는 평을 듣는다. 최재경이 안대희와 비슷한 스타일이라면 윤석열은 심재륜에 가깝다. 심재륜은 김영삼 정부 말기 온갖 외압을 뿌리치고 ‘소통령’ 김현철을 구속했다. 당시 대통령의 뜻을 받든 법무장관이 ‘불구속 지침’을 내리자 심재륜은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여차하면 외압을 폭로하겠다는 결사항전의 태도였다. 물론 최재경과 안대희도 강직한 이미지를 가졌다. 다만 두 사람은 조직에 충성하고 상관에 대한 복종과 예의를 중시한다. 국정감사장과 같이 공개된 장소에서 조직과 상관의 문제점을 폭로한 윤석열의 태도는 용납하기 힘들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출세하려면 조직의 룰에 따르고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해야 한다. 설사 조직의 방침이나 명령이 잘못됐더라도 복종해야 한다. 상사의 지시가 부당하더라도 항의하면 안 된다. 홀로 옳은 길을 걷겠다며 독자적 행보를 하면 이단아로 찍힌다. 소신껏 행동할수록 승진은 멀어져간다. 조직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는 오명도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체제와 질서에 순응하면 합리적이고 온건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좋은 보직을 누린다. 소신을 택한 사람의 길은 외롭고 힘들다. 윤석열의 길이 그렇다.

우병우, 최재경, 윤석열은 모두 한을 품은 사람들이다. 한을 품으면 자칫 독선에 빠지거나 과격해질 우려가 있다. 우병우는 검찰에서 더 오르지 못한 데 대해, 최재경은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데 대해 그렇다. 우병우는 권력욕, 최재경은 명예욕이 강하다. 두 사람의 길이 사뭇 다르면서도 똑같이 위험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윤석열은 일생일대의 수사가 좌절된 것과 하극상의 주인공으로 낙인찍힌 것이 한스럽다. 그가 특검이 된다면 피비린내가 진동할지 모른다. 검찰은 조직의 안정과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를 승진시켜주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훗날 역사는 세 칼잡이를 비교 평가할 것이다. 누가 진정한 우국의 길을 걸었는지.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우병우#최재경#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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