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野) 3당이 9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 수용 의사를 거부하면서 정치권의 총리 추천 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야당 요구대로 ‘2선 후퇴’를 명확히 밝힌다면 국회는 곧바로 총리 추천 논의를 재개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논의가 시작되면 국회가 수월하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동안 쟁점 현안에 대한 협상과 합의 과정에서 여야는 불협화음만 계속했다. 설사 여야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더라도 각종 현안에 합의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국정교과서·누리과정·사드 극한 대립
여야는 지난 19대 국회는 물론이고 20대 국회 들어서도 국정 현안을 두고 평행선을 달린 경우가 많다. 1년간의 집필을 마치고 28일 공개를 앞둔 국정 역사교과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정부가 국정교과서 집필 계획을 발표했을 때 야당은 사생결단에 나서듯 반대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는 국정교과서를 놓고 여야가 찬반으로 갈리면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야당은 이번 정기국회 예산심의에서 국정교과서 예산 삭감을 예고하는 등 불퇴전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12년 도입된 누리과정(만 3∼5세 유치원, 어린이집 공통교육과정) 예산 문제를 두고는 지금까지 여야가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한 채 ‘땜질식 처방’만 계속하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은 19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매년 정기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핵심 의제로 등장했지만 여야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국회 고위 관계자는 “지방교육재정특별교부금을 쓰면 되지 않느냐는 기획재정부의 주장이나, 보건복지부 관할인 누리과정 예산을 어떻게 교육예산에서 쓸 수 있느냐는 야권 시도교육감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며 “이런 것을 조정하라고 국회가 있지 않느냐”며 혀를 찼다.
국정교과서나 누리과정을 두고 국회 교문위는 19대 국회 내내 전쟁터를 방불케 하면서 문화체육 관련 이슈는 거의 다루지 못했다. 올해 초 선출된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교문위를 교육위와 문화체육위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여야가 합의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현안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지만 여야 어느 쪽도 머리를 맞대고 절충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민주당 초선 의원 일부는 ‘중국 탐방’을 강행해 “전략도 없이 섣부르게 갔다가 중국 관영 매체와 기관의 선전에 휘말린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법인세 인상 문제도 이명박 정부 때부터 여야가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대기만 한 쟁점이다. 4·13총선 기간 민주당 일각에서는 법인세 인상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금세 수그러들었다. 국민의당도 뒤늦게 민주당의 법인세 인상 대열에 합류하면서 야권은 여소야대의 힘을 과시할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법인세 인상을 다룬 법안을 민주당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이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 정부 추진 법안은 통과에 하세월
19대 국회부터 정부가 국정 운영에 필요하다며 추진하는 법안도 야당과의 협상이 진척되지 않아 통과에 1년 넘게 걸리거나 아예 상임위원회에 발목이 잡힌 경우도 있다.
정부가 경제활성화법이라고 제시한 30여 개 법안은 19대 국회 4년 동안 지지부진하면서도 여야가 처리하는 데 합의했지만 서비스산업발전법은 처리가 무산됐다. 정부는 이른바 노동개혁 4법을 내놨지만 이 또한 상임위에서 여야 논의도 없이 머물러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법안도 여야의 치열한 다툼 끝에 당초 개혁성이 퇴색한 채 처리됐을 뿐이다. 향후 국정이 정상화되더라도 현안을 풀기란 첩첩산중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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