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여야 정치권은 국정 정상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그 해법을 두고는 각자의 주장만 고집하고 있다.
야권은 트럼프 당선에 따른 구체적인 외교 로드맵은 제시하지 않은 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2선 후퇴만 주장하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 때문에 내치(內治)와 외치(外治)가 동시에 진공 상태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야권은 이날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된 것을 우려하면서도 국정 정상화의 전제로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만 거듭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트럼프 당선에 대해 “현재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박 대통령으로는 이 같은(트럼프를 대비한)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이 국정 및 외교 공백을 최소화하고 혼란의 장기화를 막는 길이라는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이번 트럼프의 당선으로, 국내정치 문제로도 우리 국민은 피로하고 불안한데 피상적으로 불안한 생각을 가질 것”이라며 “문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야 3당은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사실상 박 대통령을 하야시키거나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어 정국 주도권을 내년 대선까지 이어가는 ‘대통령 고사(枯死) 전략’에 돌입한 모양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이날 오전 대표 회동을 갖고 전날 박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 제안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거부했다. 박 대통령이 2선 후퇴와 총리의 권한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야 3당은 또 12일 예정된 민중총궐기대회에 당력을 집중하기로 합의했다. 박 대통령의 거취와 정국 수습책을 놓고 중구난방식 대응을 해 오던 야권이 ‘촛불’ 앞에 헤쳐 모여를 시도하는 셈이다. 청와대의 ‘국회 추천 총리’ 수용 이후 야권이 정국 주도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다른 방식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그동안 최순실 게이트 특검을 주장하다 여당이 이를 받아들이자 갑자기 특검을 철회했다가 재차 특검을 주장했다. 야권이 먼저 요구한 거국중립내각 구성 논의도 ‘전제 조건’을 앞세워 좀처럼 응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탄핵’ 또는 ‘하야’ 주장에 뒤따를 수 있는 리스크(부담)는 피하면서 야권에 유리한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반면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조속히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고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 분담도 정리해 트럼프 당선 후폭풍 등에 대비하자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대선 결과로 우리 경제와 안보 상황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며 “국내외적으로 국가와 국민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여야는 정쟁을 중단하고 힘을 합쳐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의원도 “안보와 경제가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를 돌파해야 할 국가 리더십은 실종된 상태”라며 “야 3당은 하루속히 총리 적임자를 추천하고 새 총리로 하여금 실질적인 거국내각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국회에 조속한 총리 추천을 거듭 요청했다. 배성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박 대통령의 제안은) 총리에게 강력한 힘을 주고, 능력 있고 좋은 분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지체 없이 빨리 임명하겠다는 뜻”이라며 “국회에서 총리를 빨리 추천해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간절한 호소”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미국 대선이 미치는 경제·외교 영향에 치밀하게 대비하고 있는데 직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대통령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총리에게 장관 임면권 등 내치에 대한 실질적 권한은 넘길 수 있지만 외치에 관해서는 박 대통령이 일정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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