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선 승리라는 충격에 대응할 한국의 컨트롤타워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도 “대통령 권한 이양에 대한 국회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청와대에 힘을 실어라”와 “아예 새 사령탑을 구성하고 다시 시작해라”로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트럼프의 정책이 드러날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우리 전략부터 짜라”고 입을 모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의 10일 전화 통화에 대해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미 대통령 당선인과 정상 통화로는 가장 빠른 시일에 성사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국내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실상은 역대 한국 대통령 중 가장 빨랐다는 말에 불과하다. 트럼프가 가장 먼저 통화한 정상은 이집트, 이스라엘 순이었다. 트럼프 측과의 접촉에 너무 안달할 필요는 없지만 박 대통령의 페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불참 결정을 번복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따라 한반도 주변 강국들이 ‘마초’ 이미지의 지도자들로 채워진 것도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리기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예측불가 행동을 보였던 독설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물론이고 집단지도 체제를 수정해 ‘핵심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2018년 대선에 다시 출마해 네 번째 대통령직에 도전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극우보수의 기치를 내비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모두가 강한 지도자상(像)을 구가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런 환경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하루빨리 안정시키기 위해 거물급 특사 파견과 같은 ‘쇼맨십’ 주문도 제기했다. 하지만 트럼프 캠프가 과거 사례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이 늦어질 조짐이고 핵심 인사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거물급 특사 파견 제안은 공허할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트럼프 인맥에 선을 대기보다 스스로의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병권 중앙대 교수는 “대선 기간 트럼프 후보가 수시로 말을 바꾸고 정책의 일관성도 없었던 만큼 당분간 지켜보는 게 필요하다”며 “인수위의 면면이 갖춰지는 동안 한국의 생각을 개진할 수 있도록 대미 접근 전략부터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만 보더라도 한국의 전략 부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방위비는 2014년 합의 당시 한국이 제공한 9200억 원의 절반이 넘는 4660억3600만 원이 미집행액으로 남았고 올해도 3596억9900만 원이 쌓여 있다. 대미 외교를 담당했던 전직 외교관은 “방위비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몰고 올 한미관계의 총체적 지형 변화의 한 부분”이라며 “트럼프 당선인이 비즈니스맨 출신인 만큼 현실적인 거래를 위해 방위비 협상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북정책도 한국이 선제적으로 담론과 기류를 주도할 필요성이 있다. 위성락 서울대 교수(전 주러시아 대사)는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민주당 정부보다 크다. 반대로 대북 초강경책을 쓸 수도 있다”며 “한국 정부가 ‘제재, 압박’이라는 강경 발언만 반복하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신고립주의를 내세운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에 실질적인 대응 전략을 짜지 못한다면 새로운 질서 아래서 한국이 미아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를 대통령이 맡을지, 국무총리가 맡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청와대는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실질적 내각 통할권을 이양해 내치를 전담하게 하더라도 외교안보 정책은 대통령이 계속 주도해야 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또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 분배를 정리하기 위해 국회가 총리를 조속히 추천하고, 영수회담을 통해 논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야당은 청와대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대통령에게 외치까지 내려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0일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당의 주장이 국내용 국정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외교 안보 국방까지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등 여전히 외치 문제를 두고 혼선만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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