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이석연]위기의 정국, 헌법에 맞는 돌파구 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1일 03시 00분



이석연 헌법포럼 대표·전 법제처장
이석연 헌법포럼 대표·전 법제처장
 헌법 초월적인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국회 추천 총리에게 내각통할권 주겠다”, “거국내각 총리에게 국정을 맡기고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라”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헌정 중단”이니 “헌정 마비 사태”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린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자신이 초래한 이 엄중한 국정 파탄과 민심 이반을 모면하기 위하여, 야권은 야권대로 이 기회에 국정 장악과 차기 대선 승리라는 복선을 깔고 자의적인 헌법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진정성이 결여되어 보인다.

 먼저 우리 헌법상 내각이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각은 내각책임제하에서의 국정의 최고 의결기구이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지위에 있을 뿐 헌법상 국정에 관한 최종적인 책임자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이다. 그동안 국정 파탄의 고비마다 국무총리 이하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고 대통령은 마치 국정에 초연한 것처럼 치부해 왔다. 이는 잘못된 헌정 관행이다. 따라서 책임 내각 또는 거국 내각이라는 것은 그 개념부터 헌법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 추천 인사를 총리로 임명하는 것은 헌법상 가능하다. 내각 통할권을 총리에게 주겠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내각의 조각 추천권과 내각 통할권은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총리의 실질적 권한이다. 그간 ‘대독(代讀)’ ‘방탄’ 총리 역할만 하다가 그 권한을 유명무실하게 행사한 것이다. 헌법은 총리가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도록 하고 있고, 대통령의 모든 헌법상의 행위는 반드시 문서로써 하되 총리가 부서(副署)하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국회 추천 총리라도 대통령 보좌권과 부서권만 가진 총리가 헌법을 초월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 할 수 없다.

 대통령이 총리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면 가능할 수도 있으나 이는 정치적 문제로 귀착된다. 예컨대 국군통수권은 국가 보위의 책무를 지닌 대통령이 갖는 본질적 권한으로,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는 한 이 권한을 대행시키는 것 자체가 위헌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2선 후퇴나 외치 전념 등의 수사는 헌법 정신과 거리가 멀다. 대통령제의 현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내치, 외치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지 않다.

 현 대통령제 정부 형태의 본질상 대통령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국가적 혼란을 야기할 경우에는 임기 중이라도 그 진퇴를 명백히 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취지이다. 적시에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국가의 계속성을 수호하는 것도 대통령의 직무이다.

 헌법이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국가기관의 권능을 정지시키거나 빼앗는 것이 헌정 중단이다. 대통령의 하야(사임)나 탄핵은 헌정 중단이나 헌정 마비 사태가 아니다. 헌법은 그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대통령이 사임한 때에는 사임 당시의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으로 국정을 이끌고 60일 내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이때 선출된 대통령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기간이 아닌 5년의 임기다. 이는 우리 헌법의 확고한 뜻이다. 탄핵의 경우 국회의 탄핵 의결(국회의원 200인 이상 찬성) 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재판관 9인 중 6인 이상 찬성)을 기다려야 한다. 탄핵으로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역시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렇다면 이 난국을 타개하고 국민의 상처를 치유할 헌법 합치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국회 추천 총리를 임명하여 대통령이 권한 행사를 사실상 자제하는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은 헌법적 문제점은 있으나 대통령과 총리가 국정 전반에서 협치의 정신을 발휘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때 대통령 탈당과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는 개헌에 힘을 모아 내년 상반기까지 헌법을 개정하고 새 헌법에 의해서 내년 대선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일 거국 내각 구성 해법에도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고 국정 혼란이 계속된다면 대통령의 사임과 사임 거부 시 탄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것이든 불행한 헌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진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는 이미 그 출범 때부터 예견됐다. ‘사기열전’에 ‘부지기군 시기소사(不知其君 視其所使)’라는 명언이 나온다. 그 군주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거든 그가 기용한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자치통감’엔 ‘군인즉신직(君仁則臣直)’이라고 했다. 성군이 되려면 직언하는 신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고의 진리다.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반드시 새겨 두어야 하리라고 본다.

 더 나아가 선택과 결단을 스스로 창출하지 않고 그것이 자신에게 던져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위기 시 몸을 사리다가 중도적인 인물로 평가되어 그 과실을 차지하려는 사람은 나라의 중책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본다. 이제 우리는 과대 포장된 인물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 시대정신을 이끌어 갈 인물이 필요한 때다.
 
이석연 헌법포럼 대표·전 법제처장
#탄핵#박근혜#헌법#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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