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反헌법적 사고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6일 03시 00분


권한대행도 2선 후퇴도 위헌… 선출도 퇴출도 헌법적이어야
시위대 100만이 하야 외쳐도 지금은 6·10과 상황 달라
대통령이 하야 거부하면 강제로 끌어내릴 수 없고
탄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최근 일각에서 정치적 해법(解法)으로 제기하는 ‘헌법 71조 대통령 권한대행 수용’은 반(反)헌법적이다 못해 억지에 가깝다. 헌법 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事故)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돼 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상황을 사고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도대체 이런 견해를 몇 명의 헌법학자가 지지할지 모르겠으나 다수설(多數說)이 될 수는 없다. 

 헌법은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하면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탄핵소추를 사고로 본다는 의미다. 뒤집어 보면 탄핵소추 전 수사 단계는 사고에 이르기 전 단계로, 사고가 아니라는 의미다. 미국 대통령은 탄핵소추를 당해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본다. 말할 것도 없이 수사를 받을 때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본다. 리처드 닉슨도, 빌 클린턴도 그랬다.

 대통령의 실질적 2선 후퇴 주장 역시 반헌법적이다. 당장 대통령은 군 통수권 등 국가원수의 자격에 부여된 권한을 총리에게 양보할 수 없다. 행정을 말하자면 국회가 결정한 총리가 들어선다 해도 총리는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命)을 받도록 돼 있다.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2선 후퇴를 선언하는 순간 스스로 위헌 상황을 초래한다.

 다만 대통령이 총리에게 암묵적으로 총리의 뜻에 반하는 명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겠다. 이것이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이 위헌적 상황을 피하면서 양보할 수 있는 2선 후퇴의 최대치다. 그러나 그 경우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대통령을 뭣 때문에 월급을 주고 청와대의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지원하면서 놔두는가. 탄핵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하야 주장은 헌법적이다. 누구든 대통령이 하야하라고 주장할 수 있다. 대통령이 그 주장에 귀를 기울여 자진 하야하면 헌법이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일이 된다. 그래서 대통령 2선 후퇴나 대통령 권한대행 같은 반헌법적 주장을 할 바에야 하야 주장을 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의 실질적 2선 후퇴를 주장하다가 하야 주장으로 돌아선 것은 그동안 대통령을 봐준 것이 아니라 뒤늦게 논리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대통령 권한대행이니 설레발을 치면서 하야 주장을 숨기고 있는 위선적인 논평가들만 남았다.

 다만 하야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리다. 대통령이 스스로 생각해 봐서 ‘고의로’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여기면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이라도 당장 하야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수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대통령이 범죄의 ‘고의’와 ‘심각성’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여긴다면 하야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런 대통령을 국민이 용납할 수 없다면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금은 1987년 6·10항쟁 같은 상황이 아니다. 6·10 당시 서울과 서울 인근 군부대는 연일 충정훈련이라는 시위진압훈련을 하고 있었고 투입될 지역에 대한 도상(圖上)연습까지 끝낸 상태였다. 총칼의 위협을 무릅쓰고 거리로 뛰쳐나온 100만 명은 민의를 대변하는 100만 명이었다. 그들이 청와대 문을 부수고 들어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끌어내린다고 해도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여론이 분분한 오늘날, 주말 시위 100만 명의 하야 함성은 아무리 자발적 참여자가 많다 해도 무작위 추출된 1000명의 여론조사보다도 민의를 더 정확히 대변하지 못한다. 하야와 탄핵을 분리한 여론조사에서 하야가 절반을 넘긴 적도 아직 없다. 그런데도 민의 운운하며 차벽을 뚫고 청와대로 쳐들어가 박 대통령을 끌어내린다면 그런 반헌법적 상황을 나부터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쓴, 박근혜도 문재인도 아닌 제3후보를 지지하는 수편의 칼럼이 그걸 증명할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문화융성, 국정교과서 정책에 누구보다 명확한 논조로 반대하는 글을 썼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박 대통령은 헌법적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다. 이런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것도 헌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 선출만 아니라 퇴출도 제대로 해야 민주 국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근혜#하야#헌법#정치적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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