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한 이후 한동안 ‘자숙 모드’를 보인 청와대 기류가 ‘반격 모드’로 바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에 대해서는 “자진 퇴진 불가” 방침을 확고히 했다. ‘100만 촛불’ 민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법 절차에 따라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16일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은 물론이고 ‘질서 있는 퇴진’이나 ‘완전한 2선 후퇴’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의혹만으로 하야하는 게 맞느냐”며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책임총리에게 최대한 권한을 줄 수 있지만 국정에서 손을 뗄 수는 없다는 박 대통령의 생각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헌법에 위배되는 절차나 결정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국정 운영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외교부 제2차관에 안총기 주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를 내정하며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2차관 인사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가 진행되는 경과를 봐가며 발표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유엔의 제재 논의가 여전히 완성 단계에 다다르지 않은 만큼 이번 인사 발표는 국내용 메시지라는 측면이 더 크다는 평가다. 이날 부산 엘시티 개발 수사와 관련해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지시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또 박 대통령은 다음 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방안을 신중히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지난달 20일 수석비서관회의 이후 약 한 달 만에 공식 회의석상에 나서게 된다.
한동안 각종 의혹 제기에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며 말을 아꼈던 청와대가 ‘정면 대응’으로 기조를 바꾼 것도 눈에 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했다’는 의혹에 대해 이날 “법적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최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성형시술 의혹, 박 대통령 대포폰 사용 의혹 등을 일일이 부인했고, ‘통일 대박’이 최 씨 아이디어라는 보도에는 “명백한 오보”라며 정정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전날 “온갖 의혹이 사실로 매도되는 것이 안타깝다”는 박 대통령의 심경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청와대의 이런 변화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상황 인식과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박 대통령의 성정에서 비롯된 ‘벼랑 끝 전술’로 보인다. 이미 야당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고 민심도 나빠질 만큼 나빠진 상황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도 감수하겠다는 분위기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탄핵은 국회의 권한이고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될지 확실치 않고, 의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최장 180일이 걸려 장기전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의혹에 선을 긋지 않고 박 대통령이 계속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여론 개선이나 보수층 결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정 혼란을 막을 방법에 대해 청와대는 ‘영수회담을 통해 국무총리와의 역할 분담을 논의하고 국회 추천으로 책임총리를 임명한다’는 것 외에 추가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3차 대국민 담화도 검토하고 있지만 국정 수습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여권 내에서도 청와대의 이런 태도가 촛불 민심을 더 악화시켜 극도의 혼란을 초래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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