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김기춘·우병우 국정농단도 규명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7일 03시 00분


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A는 직업군인이었다. 전방부대 근무 시절, 짧은 일정으로 휴가를 나와도 가장 먼저 충남 공주를 찾곤 했다. 치료감호소에 있는 친구부터 면회했다. A의 부모는 고등학교 때 단짝인 친구와 함께 육군사관학교에 가라고 권유했다. 이후 친구가 방황해도 우정은 이어졌다. 그런 A를 친구 누나는 무척 고맙게 여겼다. 동생에게 직접 말 못 하는 동생 걱정도 A에게 털어놓았다. A는 군인으로 승승장구했고, 누나는 대통령이 됐다.

치료감호 박지만부터 면회

 A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다. 이재수 중장은 기무사령관이었음에도 단 한 번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 대통령 주위를 최순실 일파와 청와대 3인방이 꽁꽁 둘러싸 철벽을 쳤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내시’를 자처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그 철벽을 뚫지 못했다. 진짜 내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2월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에게 “저, 여기 있어요”라고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렸던 윤상현 의원도 ‘이너 서클’에 끼지 못했다.

 3인방은 박 대통령의 표정만 봐도 어디가 불편한지, 뭘 원하는지 알아차렸다는 게 청와대 근무자들의 전언이다. 여왕을 모시듯 했다고 한다. 대통령 보좌라는 청와대 업무를 철저히 하기 위해 3인방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 한 ‘늘공’(직업공무원)들도 있었다. “간과 쓸개를 빼놓고 출근했다”는 사람도 있다.

 희귀하게 그 철벽을 뚫은 이들이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이다. 김 실장은 지난해 2월 물러났고, 우병우는 직전인 1월에 민정수석이 됐다. 이 둘이 사실상 바통 터치를 하며 최순실에게 휘둘린 박 대통령의 밀지(密旨)를 이행했다. ‘최순실→박근혜→김기춘’으로 이어지던 인사 라인이 ‘최순실→박근혜→우병우’로 바뀐 것이다.

 나는 올 4·13총선 직후 본 칼럼에서 “인사위원회까지 통과된 인사안이 막판 ‘어디선가’ 뒤집히는 일이 적지 않다”고 썼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 공직 인사는 민정수석실에서 다 했다. 인사수석실은 막판 서류작업만 했다고 한다. 이제야 장관과 청장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공무원 인사가 정상화됐다는 게 관가 얘기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던 대통령 아래서 자행되던 비정상이 사실상 대통령 부재 상태가 돼서야 정상화됐다니…. 시쳇말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 부재’ 상황에서도 김기춘과 우병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금의 박 대통령 대응을 김 전 실장이 총괄하고 있다는 소문이 청와대 주변에 파다하다. 최재경 민정수석도 김 전 실장이 천거했다는 것이다.

최순실 사태 후 인사 정상화

 최순실이 대통령의 배후였다면, 인사의 칼을 휘둘러 실행에 옮긴 사람은 우병우다. 얼마 전 한 신문에 그가 검찰청사에서 조사받는 사진이 실려 화제가 됐다. 그는 사무실용 점퍼 같은 걸 입고 있었다. 검찰 일각에선 대검 수사기획관 시절 입던 작업복이란 얘기도 나온다. 어느 피의자가 건물만 봐도 살 떨리는 검찰청사에서 편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조사받을 수 있겠는가. 검찰의 수사 의지를 짐작하게 한다.

 검찰도 제 살 길을 찾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열의를 보인다. 그러나 국정농단 배후인 최순실-박근혜 고리 못지않게 실행에 옮긴 박근혜-김기춘, 박근혜-우병우 고리가 규명돼야 한다. 나중에 ‘절름발이 수사’ 소리를 듣지 않으려거든.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김기춘#우병우#박지만#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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