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성호]안전이 그리 만만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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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만만한 건 홍어 거시기가 아니었다. 진짜 만만했던 건 안전이다. 적어도 현 정부의 인사를 보면 그렇다. 2일 청와대가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에 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을 ‘내정했던’ 것을 놓고 하는 말이다. 비록 그가 일주일 만에 사퇴했지만 이 정부가 얼마나 안전을 만만하게 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국민안전처 탄생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2014년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당시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와 해경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해경 해체와 안전행정부의 안전·인사 기능 분리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고심 끝에’라는 전제를 붙였다.

 돌이켜보니 그해 11월 초대 안전처 장관 인사 때도 고개를 갸웃했다. 현 박인용 장관은 군 장성 출신이다. 이렇다 할 방재(防災) 관련 경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안전처를 재난안전 전문가 중심의 새로운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 발표에 걸맞은 인사인지 의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군에서 다양한 비상상황을 접해본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신속’과 ‘정확’이 재난 컨트롤타워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박 장관이 이끈 안전처에 A학점을 주기는 어렵다. 잘해야 평균 C학점이고 일부 분야에서는 낙제점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장관의 전문성 탓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신설 부처로서의 한계가 더 큰 걸림돌이었다. 안전처가 올린 지진 등 방재 관련 예산은 건건이 삭감됐다. 핵심 사업 중 하나인 분야별 안전규제 강화는 예정보다 지체됐다. 각 부처의 비협조 탓이 컸다. 이 과정에서 안전처 실무자들은 급이 낮은 청 단위 기관에도 읍소하며 자료를 요청해야 했다. 안전처 안팎에서 “정부가 낳기만 하고 키우는 걸 포기했다”는 자조 섞인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박 전 차관의 안전처 장관 내정은 의외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를 교체하는 건 당연하면서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안전처 장관을 바꾼다? “내무관료 출신으로 퇴직 후에도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전개했다”는 청와대의 인선 이유를 들을 때는 실소가 터졌다. “해군과 합참의 주요 보직을 역임한 해상과 합동작전 전문가”라는 현 박 장관 발탁 이유에 훨씬 공감이 갔다. 오죽하면 박 전 차관 내정 발표 후 현장 소방관 중 한 명이 기자에게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이란 말까지 했을까. 박 전 차관이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무속행사에 참석하고 자신의 책에서 전생 체험까지 주장한 부분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박 전 차관은 김병준 총리 후보자가 추천했다고 한다. 2003년 참여정부 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 각각 위원장과 기획운영실장을 지낸 인연 덕분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손발이 맞는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부처 중에서 왜 하필 안전처를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안전처가 총리실 산하에 있다는 이유로 김 후보자가 선택한 것인지, 박 대통령이 현 박 장관을 문책성으로 경질하려 했는지 확실치 않다. 그저 안전처 장관 정도는 언제든 갈아 치우고 아무나 앉혀도 된다는 판단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분명한 건 일주일 만에 실패로 돌아간 이번 인사가 주는 비극적 메시지다. ‘권력의 안전’을 위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국민은 지금 그 상황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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