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20일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구속기소하면서 박 대통령에 대해 “현재까지 확보된 제반 증거자료를 근거로 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범죄 사실과 관련하여 상당 부분이 공모관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공모’를 발표하면서도 최 씨의 국정 농단에 박 대통령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파악하고 직권남용과 공무상비밀누설 등 범죄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기금 774억 원을 모금한 것을 박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강요행위로 봤다. 박 대통령은 4대 국정기조의 하나인 ‘문화융성’에 착안해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되 재산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기업체의 출연금으로 충당하기로 계획하고 2015년 7월 24, 25일 7개 그룹 회장들과 독대해 적극 지원해 달라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것이다. 최 씨는 이 무렵 대통령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재단 인사와 업무 관련 지시를 내린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기업들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안 전 수석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각종 인·허가나 세무조사의 불이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출연 지시를 따랐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최 씨가 이권을 챙기는 과정에 직접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안 전 수석은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친구 부모 회사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이 좋은 회사라면서 현대차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또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의 지시로 사실상 최 씨 소유인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의 홍보책자를 주면서 광고를 주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는 주로 안 전 수석의 진술과 수첩 기록으로 신빙성이 높다.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떠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에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청와대는 9월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 씨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부터 “언급할 가치가 없다”며 단호히 부인해왔다. 10월 24일 대통령 연설문 등 국정기밀 문건이 담긴 태블릿PC 보도가 나오자 다음 날 박 대통령은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표현 등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거짓 사과’를 했을 뿐이다. 11월 4일에는 두 재단에 대해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참담한 심정”이라며 자신은 모르는 일처럼 발뺌했다. 검찰 조사는 물론이고 특검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도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어제 박 대통령은 변호인을 통해 “공익을 내세운 기금 모금은 역대 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라는 해명을 내놓았고, 청와대는 검찰 발표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앞으로도 국정에 소홀함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겠다니, 도대체 대통령은 최 씨에게 무슨 연고로 이토록 꼼짝 못하고 사로잡힌 것일까 의문이 다시 일지 않을 수 없다.
검찰 공소장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총책’이고 안 전 수석은 ‘행동대장’이고 최 씨는 수금담당자였다. 범죄 혐의가 이 정도 되면 검찰은 박 대통령과 안 전 수석에게 제3자 뇌물수수혐의를 적용해야 한다. 검찰은 과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 단죄한 바 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최 씨에게 건넨 180건의 문서 중 47건이 공무상비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장차관급 인선 자료 등을 보내면서 “최 선생님에게 확인받으라”고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하는 등 최 씨에게 국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 온 사실도 드러났다.
당초 최 씨 고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였다가 최 씨의 태블릿PC에서 청와대 문건이 발견됐다는 등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뒤늦게 수사에 나선 검찰은 수사 소홀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검찰은 이후에도 언론 보도를 따라잡기에 급급하다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민심을 확인하자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고 어제는 청와대와 정면 대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권력의 향방에 민감하다는 것을 온 국민 앞에 드러낸 검찰이 과연 수치심을 아는지 의문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박 대통령의 위법 혐의만으로 탄핵을 발의할 요건은 충분히 갖춰졌다. 피의자가 된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은 탄핵을 당하더라도 법대로 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의 혐의는 법정에서의 공방을 통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탄핵은 법적 절차보다 정치적 절차에 가깝다. 검찰이 밝혀낸 대통령의 위법 혐의가 중대한 위법으로 탄핵 사유가 되는지는 국회의원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이런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탄핵하지 않으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특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당장 탄핵을 발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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