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책임총리·검찰수사 말 바꾼 靑, 국민과 맞서겠다는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2일 00시 00분


 국회에 책임총리를 추천해 달라던 청와대가 어제 “상황이 달라졌다”라며 재검토를 시사했다가 다시 번복했다. 정연국 대변인은 “야당이 다른 뜻으로 국회 추천 총리를 요구하고 있다”라며 “조건이 달라져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자 “입장에 변화가 없다”라고 서둘러 진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의 자체는 유효하지만, 대통령 퇴진을 전제로 한 총리 추천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박 대통령이 여야와의 협의 없이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뒤 이달 8일 국회로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가 총리 추천을 요청한 것은 국민에게 한 약속이었다. 야당이 총리의 ‘권한’을 어디까지 줄 것이냐고 따지며 지금껏 총리 추천을 마다한 것은 비난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약속을 뒤집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 새 책임총리보다는 지금의 황교안 총리가 그대로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거나 책임총리 문제를 대야(對野)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계산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할 때만 해도 박 대통령은 자숙 모드를 보이는 듯했으나 이후 은근슬쩍 국정 복귀 시도를 하더니 20일 검찰 수사 발표 뒤에는 공격 모드로 돌아섰다. 국가 최고의 수사기관인 검찰이 대통령 심복들의 진술과 메모 등을 근거로 박 대통령의 혐의를 특정한 수사 결과를 내놓았는데도 청와대는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폄훼했다.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김수남 검찰총장의 수사를 부정하면서 어떻게 법치를 말할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의 수사에 대비하겠다”라고 말한 것도 의도가 불순해 보인다. 특검 2명의 추천을 모두 야당이 하기로 돼 있는 것과 관련해 ‘중립성’을 문제 삼아 특검 임명을 지연시키거나 여차하면 특검 조사마저 거부하겠다는 자락을 깐 것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던 약속을 뒤집고 조사에 불응하겠다는 것도 대통령답지 못하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을 범법 행위에 이용한 것만도 있을 수 없는 일로 백배 사죄해야 마땅하다. 하물며 대통령의 권한을 방패막이로 이용해 검찰 조사까지 기피하면서 뻗대기로 나오는 것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국민과 맞서겠다는 노골적인 도전이나 다름없다.
#책임총리#청와대#대통령#유영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