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이 팔짱을 낀 채 말을 건네자 검찰 직원들은 깍듯한 자세로 응대한다. 변호인은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웃고 있고…. 한 장의 사진이 웅변하는 우리 검찰의 일그러진 민낯이다. 취재진을 매섭게 노려보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이 장본인이다. 언론은 ‘황제 소환’이라 했지만 ‘범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개털과 범털.’ 죄수들의 은어(隱語)로 말본새는 좀 그렇지만 둘 다 표준어다. 개털이 돈이나 뒷줄이 없는 일반재소자라면, 범털은 돈 많고 권력 있는 거물급 재소자를 가리킨다. 범털이 있는 방이 ‘범털방’인데, ‘개털방’은 잘 안 쓴다. 그 대신 ‘쥐털방’이 있다. 살인범이나 강도범 등 흉악범을 가둔 방을 그렇게 부른다. 아 참,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가 되는 바람에 범털 중의 범털을 일컫는 말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늙은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은 ‘노털’일까, ‘노틀’일까. 많은 이가 ‘노인의 털’이나 ‘오래된 털’쯤으로 여겨 ‘노털’로 알고 쓰지만, ‘노틀’이 옳다. 노인을 뜻하는 중국어 ‘라오터우얼(老頭兒)’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노틀’로 바뀐 것이다. 한데 어쩌랴. 언중은 하나같이 ‘노털’이라고 하니. 표준어 아귀찜 대신 사투리 아구찜이 더 행세를 하는 것처럼.
잘 알다시피 ‘깃털’도 자주 쓴다. 머리털 몸털처럼 깃털도 원래는 깃에서 난 털이었다. 그런데 언중은 ‘어떤 사건의 주범이 아닌 종범(從犯)’이란 뜻으로 즐겨 쓴다. 큰 사건이 날 때마다 몸통은 온데간데없고 깃털만 나부끼니 그럴 만도 하다. ‘깃털 징계’도 우리말샘에 올라 있다. 몸통은 놔둔 채 약한 사람만 징계하는 걸 뜻한다. 이쯤이면, 언중의 말 씀씀이를 받아들여 깃털의 뜻풀이를 추가하는 게 좋을 성싶다.
또 있다. 터럭줄이 변한 ‘타락줄’은 사람의 머리털을 꼬아 만든 줄이다. ‘털너널’은 몹시 춥거나 먼 길을 갈 때 덧신는, 털가죽으로 크게 만든 버선이다. ‘털수세’는 털이 많이 나서 험상궂게 보이는 수염을, ‘터럭손’은 터럭이 많이 난 손을 말한다. 그러니 ‘털’과 ‘터럭’은 형제다.
19일에도 방방곡곡에서 촛불 시위가 벌어졌다. 최순실 국정 농단의 진실을 털끝만큼도 숨기지 말고 모두 밝히고, 분명하게 책임을 지라는 민심의 표현이다. 근데 뭐?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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