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기업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한국 경제 위기론’이 점차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는 마땅한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은 애꿎은 정책과 예산에까지 ‘칼질’을 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자칫 한국 경제를 살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 연구개발비 첫 마이너스 전환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의 전체 기업(금융보험업 제외) 매출액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줄어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9년, 2010년에도 기업 매출액은 증가했다. 최근 상황이 그때보다 더 나쁘다는 의미다.
기업 매출액이 감소한 원인으론 저유가와 세계 경기침체가 꼽힌다. 강유경 통계청 경제통계기획과장은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제품 판매 단가 자체가 내려간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두바이유 가격은 2014년 말 배럴당 53.6달러에서 지난해 말 32.2달러로 39.9%나 내렸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제품 판매량이 줄어든 것도 기업 매출액 감소를 심화시켰다. 특히 국내 수출 기업들이 몰려 있는 제조업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보다 5.3% 감소하며 전체 감소율(3.2%)을 웃돌았다.
매출보다 더 우려되는 분야는 연구개발비다. 국내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매년 10% 내외로 증가하다 2014년 증가 폭이 2%로 뚝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 결국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연구개발(R&D)은 기업이 지속 성장을 위해 하는 투자 행위다. 연구개발비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들의 미래 투자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연구개발비 감소와 함께 R&D에 비용을 지출한 기업 수도 전년(6224개)보다 5.6% 감소한 5874개에 그쳤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래 먹거리가 많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더 과감한 R&D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박근혜 정부가 축소했던 R&D 투자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예산·세법 최순실 ‘불똥’
이처럼 경기 불안이 심화되고 있지만 정부 정책과 예산은 최순실 게이트란 ‘암초’를 만나 좌초하는 분위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초반만 해도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등 이른바 최순실·차은택 예산을 삭감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나라살림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기본적 연구조차 가로막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예산 삭감이 대표적이다. KDI는 3년간의 준비 끝에 내년부터 6억1200만 원을 투입해 ‘국가 정책과 정책목표 수립’을 위한 연구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국가 재정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참고서’를 만드는 작업이다. 하지만 야당의 강한 반발에 부닥쳐 연구를 시작도 못할 위기에 놓였다. 예결특위에서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제 와서 무슨 방법을 찾아낸들 (효과가 있겠냐), 신정부 출범하고 나서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어차피 다음 정부가 쓸 수 있도록 하려면 지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버텼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인 김현미 예결특위위원장이 “올해 하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예산 편성이 보류됐다.
7400만 원을 들여 KDI가 추진하려던 ‘정책금융 개선 방안’ 마련 사업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해야 할 사업”으로 분류돼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체육·문화 관련 세법들에도 제동이 걸렸다. 장애인 운동경기부를 만든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전까지만 해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장애인 체육활동 지원이란 명분도 충분했다. 하지만 일부 야당 의원이 “(스포츠계 관련 법안이라) 최순실법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주장해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영상 콘텐츠 제작 비용에 세액공제를 신설하는 법안 역시 ‘차은택법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통과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함에도 단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체육·문화 관련 법안들이 대거 폐기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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