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0일 발표한 최순실 씨(60)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7),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이상 구속 기소) 등 3명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에서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기업들이 했던 해명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 스스로 신뢰를 저버리면서 총수들이 국정조사를 받도록 자초했다는 비난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9명의 총수를 상대로 사실 규명보다는 ‘망신 주기 식 조사’가 이뤄질 것을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그간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해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기업들이 공감대를 형성해 자발적으로 모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지난달 검찰에 소환되자마자 “안 전 수석이 시킨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검찰도 20일 발표에서 “안 전 수석이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발표 직후 전경련 측에 “그간 설명과 검찰 발표가 다르지 않으냐”고 묻자 전경련 측은 “따로 말할 내용이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일관된 모르쇠 행태에 대해 재계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론을 통해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기업의 반응도 전경련과 다르지 않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차은택 씨(47·구속 기소)가 관여한 중소 광고업체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를 몰아 줬다는 의혹에 대해 “칸 국제광고제 수상 경력을 인정해 계속 광고를 맡기게 됐다.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광고대행사로 선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처지의 KT도 ‘광고 몰아주기’나 ‘비선 실세의 인사 개입’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모두 사실과 달랐다. 수사 결과 안 전 수석은 현대차그룹에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를 맡기도록 종용했고, 현대차그룹은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과 3개의 중소 광고회사에만 광고를 주기로 확정돼 있던 내부 규정을 깨고 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를 맡겼다. KT는 안 전 수석의 요구를 받고 차 씨와 친분이 있는 이동수 씨(55)와 신혜성 씨(43·여)를 각각 전무와 상무보로 채용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독대와 관련해서도 거짓말은 계속됐다. 롯데는 올해 2, 3월경 신동빈 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의혹이 일자 “당시 신 회장은 해외 출장 일정이 있어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검찰 수사 결과 신 회장은 3월 14일 박 대통령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독대했다. 한진그룹도 지난해 7월 조양호 회장과 박 대통령의 독대를 부인했지만 틀린 해명으로 밝혀졌다.
포스코는 “차 씨가 광고회사 ‘포레카’를 강탈하려던 시도에 권오준 회장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권 회장이 안 전 수석과 통화하며 최소한 관련 내용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들의 거짓말이 수사가 시작되기 전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사정을 밝히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엔 진실에 눈을 감고 혼란을 부추긴 것이어서 “강제 수사가 아니었으면 국민을 상대로 한 거짓말은 계속됐을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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