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전면으로 부상 중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7)이 식품기업 농심의 고문으로 취업한 것을 놓고 처신 논란이 일고 있다. 재계에서도 대통령을 보좌하던 인물이 민간 기업에 직을 두는 것이 이례적이라며 그 배경에 관심을 쏟고 있다.
23일 재계와 식품업계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올해 9월 농심의 비상임 법률고문 자리를 받아들였다. 올해 8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 승인을 받은 직후다. 2013년 8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취임한 김 전 실장은 2015년 2월에 사임하고 1년 7개월 만에 민간 기업에 취업했다. ○ 재계 “왕실장의 취업, 이례적”
농심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순수한 전문가 영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회사 경영 전반의 법률적인 부분에서 조언을 주는 역할이다. 김 전 실장은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인 2008∼2013년 농심의 법률고문이었다”고 말했다. 농심 측은 김 전 실장에게 매달 1000만 원 미만의 보수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비서실장이, 그것도 ‘왕실장’이란 별명을 가진 현 정권 실세가 정권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민간 기업에 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재계는 보고 있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양측 모두 의아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은 괜한 의혹을 받을 수 있다. 또 대통령을 모시던 분이 기업에 온다는 건 멋쩍은 일이다. 격에 안 맞는 직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농심의 김 전 실장 영입 시기도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8, 9월은 농심과 오너 간 형제지간인 롯데그룹이 한창 검찰 수사를 받던 시기다. 신춘호 농심 회장(84)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4)의 둘째 동생이다.
농심 측은 “김 전 실장과 9월에 자문 계약을 해 12월에 계약이 끝나고 재계약하지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재계와 정치권에서 나오는 분석들은 억측이다”고 해명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도 “공직자윤리법 17조의 취업허가제한 요건에 저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 전 실장의 취업이 승인된 것”이라고 밝혔다. 퇴직 전 5년간 소속됐던 부서와 업무상 밀접하게 관련됐을 경우 취업 불승인 또는 취업 제한 결정이 난다. ○ 전직 비서실장들 ‘정중동’
농심 신 회장이 김 전 실장과의 친분 때문에 영입했다는 분석도 있다. 농심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은 고집이 강한 편이다. 세세한 일도 직접 챙기기 때문에 직접 김 전 실장을 영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좋게 말하면 ‘의리’를 지킨 것이겠지만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결정일 수 있다. 신 회장의 속내는 헤아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단순히 오너와의 친분 때문에 영입 제안이 왔다 하더라도 이를 수락한 것이 적절한 처신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전직 대통령비서실장들은 별다른 정치적 활동 없이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비서실장인 허태열 전 실장(71)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 대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다. 비서실장 퇴임 이후 국정기획수석비서관 출신 새누리당 유민봉 의원,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같은 당 곽상도 의원 등 박근혜 정부 1기 참모진과 ‘청초회(靑初會)’를 결성해 산행 등을 함께했지만 최근에는 모임이 뜸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실장 측은 “별다른 활동 없이 나라 걱정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주일본 대사, 국가정보원장,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이병기 전 실장(69)도 퇴임 후에는 서울 여의도에 마련한 작은 사무실에서 지인들을 만나는 게 전부라고 했다. 이 전 실장은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 약속이 있으면 (사무실에) 나와 사람을 만나고 그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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