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탄핵 찬성하는 新보수’ 결집 나서… 반기문 합류 노릴수도

[탄핵 정국]‘대선 불출마’ 김무성 구상은

김무성 “대통령이 국민 분노 더 조장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운데)가 2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개헌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

　2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전 대표는 자신의 심경을 중국 당나라 고승 장사(長沙)의 글귀로 대신했다. ‘백 척 높이의 흔들리는 장대 위에서 한 발 더 내디디면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의미다. 이날 김 전 대표의 승부수를 두고 ‘정치적 역설’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선을 내려놓은 대신 새로운 정치적 꿈을 꾼다는 얘기다. 여권발 정계개편으로 정치권 전체를 흔들어 보겠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 선언 직후 곧바로 새누리당 의원들을 상대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 연판장을 돌렸다. 하루 만에 30여 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나경원 유승민 정병국 주호영 의원 등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에 참여하는 의원 상당수가 서명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전체 의원은 전날 김용태 의원의 탈당으로 128명이다. 이 중 4분의 1가량이 탄핵안 발의뿐 아니라 탄핵안 가결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고, 국민적 분노는 끓어오르는데 오히려 분노를 더 조장하는 행동을 박 대통령이 하고 있지 않느냐”며 박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이어 “이렇게 하면 보수가 몰락한다. 보수의 몰락을 막기 위해 한계점에 오면 (탈당을) 결단할 수밖에 없다”며 “(탈당과) 탄핵은 상당한 연관이 있다”고 강조했다. 탄핵과 탈당을 하나의 패키지로 엮은 셈이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 출당이나 탄핵을 ‘패륜행위’로 규정했다. 김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 카드를 꺼내며 ‘탄핵 주도’를 선언한 건 탄핵이 친박-비박(비박근혜)을 확연히 갈라놓는 경계선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탄핵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두 진영의 정면충돌은 피할 수 없다. 이때 ‘보수 재탄생’을 명분으로 비주류의 집단 탈당이 가능하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 측은 “탄핵을 두고 ‘친박계 당’과 ‘비주류 당’으로 갈렸을 때 보수층이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며 “보수층의 지지가 ‘비주류 당’으로 쏠리는 순간 친박계는 지리멸렬하게 된다. 내년 1월 귀국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새로운 보수’를 내세운 비주류 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자신했다. 탄핵 주도는 여권발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라는 얘기다.

　여권 내 ‘탄핵풍(風)’이 집단 탈당으로 이어지면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전날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 의원은 이날 ‘제4지대’를 강조했다. 국민의당이라는 ‘제3지대’ 밖에 보수적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김 의원을 만난 뒤 “(김 의원이) ‘제4지대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테니 서로 협력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제4지대는 개헌을 매개로 더불어민주당 내 비문(비문재인) 진영과 연대할 가능성도 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대통령제 아래서 5년마다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끝으로 다시는 국민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탄핵과 함께) 개헌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김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에 “정치인의 기개와 결단을 강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후계다운 절도 있는 정치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대선 후보 지지율 경쟁에서 밀린 김 전 대표가 개헌을 통해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의 총리를 염두에 두고 대선 불출마 카드를 던진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저녁 자신과 가까운 전·현직 의원 40여 명과 만찬 회동을 열고 정치적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강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