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각각 이사회를 열고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 대 0.35 비율로 흡수합병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두 회사가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인 15만6493원과 5만7234원보다 각각 20.1%, 10.9% 높은 가격이었다.
장밋빛 미래가 점쳐지던 두 회사 간 합병을 놓고 ‘태클’이 들어온 건 그로부터 열흘 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깜짝 등장해 합병 비율이 너무 낮다고 제동을 걸면서부터다. 약 1년 6개월 후 엘리엇이 주장했던 논리가 다시 부활했다. 엘리엇도 손을 들고 나간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합병 비율 이슈를 되살린 것이다. ○ 2015년 7월에 무슨 일이
이번 논란이 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려 공분을 자아내는 가장 큰 이유는 삼성그룹 오너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에 손을 댔다는 ‘프레임’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성이 청와대에 합병에 힘을 실어 달라고 청탁했는지, 청와대가 국민연금공단에 외압을 행사했는지를 가리는 게 핵심이다. 검찰이 23일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대한 두 번째 압수수색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합병 찬성 과정을 지켜본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들은 “찬성하라는 외부 강압은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오히려 국민연금이 엘리엇 측과 보조를 맞춰 합병에 반대하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지난해 합병할 당시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용인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심각한 국부 유출에 대한 우려와 함께 경영권 방어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지난해 7월 8일까지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보고서를 낸 2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 가운데 21곳이 합병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최순실 프레임에 갇힌 논란
국민연금이 합병에 무리하게 찬성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것이 아니냐는 뒤늦은 논란에 대해 국민연금공단과 삼성은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 결의 이사회 전 한 달간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미국은 상장회사 간 합병 비율이 당사자 간 협의로 결정되지만 한국은 법에 정해져 있어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손실을 볼 것을 알고도 삼성의 승계를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란 반응이다. 지분가치는 주가에 따라서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만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측은 이날 설명자료를 내고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주식 가치의 상승 여지 등을 재무적 투자자 입장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라며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에 이익이라고 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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