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절차적 위법’ 국정 역사교과서 이제는 접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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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강석규)는 어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조영선 변호사가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비공개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집필 기준을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판결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의 절차적 위법성을 지적한 것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도 심각하다.

 국정 고교 한국사와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2017년 3월 신학기부터 배우게 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은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6월 검정 역사교과서의 좌(左)편향 기술을 지적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확고한 역사관과 자긍심을 키울 수 있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역사 전쟁’을 하듯 강조했다. 이 때문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교육 후진’이라는 비판이 무시됐고, 교육부는 교과서 집필 전에 반드시 제시해야 하는 집필 기준도 내놓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에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작년 11월 교육부 국정화 고시 직후 박 대통령이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했던 말이 ‘최 씨 작품’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국정 교과서를 주도했던 김상률 당시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최 씨 측근인 차은택 씨의 외삼촌으로 밝혀지면서 역사학계는 ‘최순실 교과서 반대’에 나섰다. 진보좌파가 주장하듯 국정 교과서가 친일·독재 미화를 하진 않는다 해도 박근혜 정부가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사를 과연 공정하게 기술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 역사교과서는 1년짜리 단명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교육부가 28일 역사교과서의 현장 검토본과 집필 기준을 공개해 한 달간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으나 역사 해석은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검인정 교과서의 좌편향과 사실(史實)에 대한 오류는 검정을 강화해 바로잡는 것이 순리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또 한번 국론 분열을 일으키지 않도록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국정화 추진을 중단해야 옳다.
#서울행정법원#강석규#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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