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결재도 공문서도 없이 불투명하게 진행되는 문화창조융합본부 사업은 문화부판 4대강 사업이었다.”
‘문화계 황태자’로 불려 온 차은택 씨(47·구속)가 주도한 문화창조융합사업을 강하게 비판한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사진)의 비망록이 공개됐다. 여 위원장은 차 씨 후임으로 4월 8일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취임했다 50여 일 만에 사직을 강요받은 끝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 위원장은 8월경 국정감사를 염두에 두고 작성한 ‘추진단장 임용에서 사임까지 간략 경과 보고’라는 CBS가 입수한 문건에서 차 씨의 전횡과 불투명한 예산 집행을 지적했다가 사퇴하게 된 배경을 녹취록 형태로 꼼꼼하게 적었다.
여 위원장은 4월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취임 후 업무 결재 라인에서 배제된 ‘허수아비’ 신세였다고 폭로했다. 그는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진식 부단장으로부터 “여기는 차 단장이 기획부터 시공과 입주자 선정까지 다 해 놓은 곳”이라며 “차 감독이 ‘명예단장’으로 계속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여 위원장은 취임 직후 문체부가 파견한 관료들에게 “정식 결재 라인을 만들고 업무와 관련된 공문서 일체를 달라”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 이 부단장은 “우리는 증거나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 문체부에서 파견된 공무원은 기획과 관리만 할 뿐 조직적으로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소속이기 때문에 결재 시스템이 없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또한 최보근 당시 문체부 콘텐츠정책관은 “꼭 영수증 보셔야 하나. 설마 영수증을 감사에 쓰려는 것인가. 위원장님 정치하실 건가요?”라고 되물어 왔다고 한다.
여 위원장은 4월 13일 서울시내 P호텔에서 당시 김종덕 문체부 장관, 김상률 대통령교육문화수석, 차은택 전 단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을 때 담판을 시도했다. 여 위원장이 “취지며 예산이며 모두 불투명하다”라고 항의하자 김 장관과 김 수석은 “차 감독이 다 만들어 놓고 길 닦아 놓은 것이니 차 감독한테 도움을 잘 받아서 일하라”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직제상 임명권자인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의 대화도 기록돼 있다. 여 위원장은 5월 11일 최 장관과의 면담에서 융합본부 공무원들의 예산 집행 명세서 제출 거부, 전자결재 시스템도 공문서도 없이 일하는 구조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최 장관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문체부에서 운영하는 것은 좀 살펴봐야 할 일”이라며 “안종범 수석을 만나 뵙고 상의 드려라”라고 조언했다.
여 위원장은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비망록은 모두 사실”이라며 “모든 공직자는 상근이 원칙인데 단장직을 비상근으로 만들고, 정당한 문제 제기에 사직을 권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창조융합본부 김경화 과장은 “여 위원장이 맡은 직책은 비상임으로 애초에 자문만 맡을 뿐 결재 권한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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