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났을 때 그 부위를 마취하려는 겁니다. 주사 맞을 때 덜 아프라고 솜에 바르는 거예요.”
‘청와대가 성형시술용 마취크림을 구입했다’는 동아일보 보도(24일자 A1·8면)에 대해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오전 언론에 밝힌 해명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사를 맞을 때에는 ‘알코올이 묻은 솜으로 주사 부위를 닦아낸다’는 의료계의 반론이 나왔다. 청와대는 이선우 의무실장까지 나서 의약품 관련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하고 나섰지만 의료계에서는 “상식과 다르다”는 목소리가 높다.
○ 전문의 “간단한 주사제만 있으면 시술 가능”
청와대 의무실은 이날 ‘엠라5%크림’에 대해 “피부과, 성형외과 시술에 주로 쓰이고 다른 용도로는 잘 쓰이지 않는 약품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청와대 내에서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주삿바늘 삽입 또는 피부 표면 마취를 위해 사용되는 약물”이라며 의약품의 일반적인 효능만 설명했다.
동아일보가 취재한 복수의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의사들마다 진료나 처방이 다르겠지만 엠라5%크림은 상처가 난 곳이 아닌 상처를 내기 전, 즉 미용이나 성형 시술에 주로 사용한다”고 강조했다. A성형외과 원장은 “이 크림을 상처 치료에 쓰려고 발랐다는 건 ‘된장이 상처에 좋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는 “우리 의무실은 피부미용, 성형 시술을 할 수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성형 전문의들에 따르면 보톡스, 필러, 리프팅 등의 주요 성형 시술은 작은 가방에 넣을 수 있는 주사제, 알코올 솜, 주사기, 엠라5%크림 정도만 있으면 어디서든 시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B성형외과 전문의는 “간호사 없이 의사 혼자서도 가능하다. 설비는 별로 필요치 않다”며 “다만 병원 외에 장소에서 시술하면 의료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또 청와대는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에 대해서는 “혈관 확장 효과가 있어 고산병 치료와 예방을 위해 선택한 약제”라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가이드라인에도 포함된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에서는 비아그라 등이 혈관 확장 효과가 있어 산악 현장에서 일부 이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발기부전 치료제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암관리학과 교수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고산병을 악화시킨다는 연구도 있고, 가격도 고산병 표준 예방·치료제인 아세타졸아마이드보다 70배 이상 비싸다”고 밝혔다. 태반주사, 백옥주사 등 주사제를 청와대 근무자 건강관리를 위해 구입했다는 해명에 대해서도 전문의들은 “이 주사제들은 건강보다는 피부 미용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제2의 프로포폴은 의견 엇갈려
청와대는 이날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와 국소마취제 ‘리도카인’에 대해 “응급상황으로 기도 삽입 시 고통을 줄이는 응급약품으로 호흡 억제, 뇌압 안정성 면에서 우수해서 구매했다” “피부미용 시술용이 아니라 경호실 직원, 경찰의 외상 처치 시 통증 감소용”이라고 각각 설명했다.
취재팀이 국내 대형병원에 의뢰해 이 같은 해명을 분석한 결과 청와대가 밝힌 각 의약품의 효과는 사실이며, 사용방식도 일리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미용성형에 많이 쓰이는 프로포폴이 향정신성 의약품인 탓에 최근엔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가 그 대안으로 사용되는 것도 ‘맞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프로포폴은 혈압 강하 등의 부작용으로 심하면 사망하는 의료사고도 발생할 수 있지만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는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덜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는 한 번에 약 5mL씩 처방하는데 청와대는 300mL나 구입했다”며 의아해했다.
청와대는 또 고령층용 불면증 환자 수면제 ‘서카딘서방정’을 600개나 구입한 이유에 대해 “대통령 해외순방 시 수행원들의 시차적응용”이라고 해명했다. 보스민액, 니트로주사 등 수술 시 사용되는 혈압조절 약품을 구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혈용, 비상상황 시 혈관 확장 등 응급용이라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의료진의 경험과 선호가 달라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지만 소신대로 구매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대학병원 교수는 “청와대 해명이 일부 맞더라도 세간의 불신이 너무 큰 만큼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더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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