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 현장. 이날 국감에선 문체부 국감 사상 처음으로 7급 주무관이 증인으로 단상에 섰다. 김모 주무관(33)은 미르재단 설립 허가 업무를 맡았던 담당자였다. 지난해 10월 26일 당시 공무원 임용 4개월 차 ‘견습 직원’ 신분이었던 그는 상관의 지시에 따라 단 하루 만에 미르재단 허가를 내주기 위해 세종시와 서울을 분주하게 뛰어다녀야 했다.
주무관이 증인이 된 건 조윤선 장관을 비롯한 문체부 간부들이 ‘미르재단 설립 허가 과정에서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한결같이 부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재단 설립 허가 전결권을 갖고 있는 하윤진 당시 대중문화산업과장은 “법인 설립 업무는 보통 주무관들이 한다”며 발을 뺐다. 이런 사정으로 김 주무관은 이날 밤 늦게 국감 현장에 도착해 오전 1시까지 의원들의 집중적인 질문을 받았다. 7급 주무관이 문체부를 대표해 증인석에 오른 것을 지켜본 문체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주무관이 조직의 총알받이가 됐다” “비선 실세들의 ‘놀이터’가 된 문체부 조직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모르쇠로 일관한 문체부 간부들의 주장과 달리 하 과장은 최근 미르재단 설립 허가 신청 나흘 전 상관인 최보근 콘텐츠정책관 지시로 청와대에서 열린 재단 설립 회의에 참석해 ‘10월 27일 미르재단 현판식에 맞춰 반드시 설립 허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 과장은 당시 국감을 앞두고 직속상관인 최병구 콘텐츠정책관에게 이런 사실을 전해 장관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 과장의 증언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25일 “문체부 공무원들을 위증으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장관은 25일 열린 교문위 전체회의에서 “9월 국감 때 미르 관련 청와대 회의를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또 부인했다.
부당한 윗선의 지시를 책임감 없이 수행한 뒤 책임질 때가 되면 밑에 떠넘기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은 최순실 차은택 국정 농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무원들이 임용될 때 하는 선서 중에 ‘나는 정의의 실천자로서 부정을 뿌리 뽑는 데 앞장선다’는 항목이 있다. 문체부를 포함한 모든 부처 공무원들이 되새겨야 하는 초심(初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