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격랑의 1주일]“사드 문제 등 차기정부로 넘겨라” 지지층 결집 의식 연일 강경발언
민주 일각 “대선 다자구도 염두… 40% 득표 전략으로 선회한 듯”
“경제 망치고 안보 망쳐온 가짜 보수 정치세력, 거대한 횃불로 모두 불태워 버립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탄핵 국면’에서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200만 촛불은 우리 사회의 구악을 불태우고 새로운 세상을 걸어 나가는 횃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야말로 벌 받을 사람 벌 받게 하자. 박 대통령이든 최 씨 일가든 부당하게 모은 것 모두 몰수하자. 뇌물죄로 처벌받게 하자.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촛불집회 직전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노변격문(路邊檄文)―시민과의 대화’에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나 사드 배치, 역사 국정교과서 문제 모두 박근혜 대통령은 손을 떼고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아! 배후에 최순실이 작용했겠구나’,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F-35 도입 결정을 언급하며 “방산비리 매국노, 매국집단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야권 대선주자 중 가장 늦게 박 대통령 퇴진 운동에 합류한 문 전 대표는 19일 전국적인 대규모 촛불집회 이후 본격적인 강경 모드로 선회했다. 그의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은 지난주 “박 대통령 퇴진 운동의 행보로 ‘문재인표 촛불투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문 전 대표는 현장 밀착형 행보를 이어가며 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표 촛불투쟁’은 21일 대구 경북대, 23일 서울 숙명여대, 25일 수원 경기대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28일엔 대전지역 대학생들을 만날 예정이다. 문 전 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고 하는데, 헌법에 무슨 죄가 있느냐. 보수적이고 극우적인 정치권력과 검찰과 언론과 재벌대기업 간 특권 카르텔이 아주 강고하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거나 “주류 언론이 감시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니 제왕적 대통령이 생긴 것”이라며 언론 탓을 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 측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박 대통령에게 기회와 시간을 줬지만 박 대통령이 이를 끝까지 거부한 만큼 문 전 대표도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그의 바뀐 행보를 가능성이 커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전략 수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집토끼(핵심 지지층)와 산토끼(중도층과 무당파)를 동시에 겨냥하는 장기전 전략에서 ‘핵심 지지층 굳히기’라는 단기전 전략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는 뜻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한 대선 양자 대결을 염두에 둔 51% 득표 전략보다 40% 득표 전략으로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사실상 붕괴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만큼 3자 또는 4자 대결 구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4자 대결을 펼쳤던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는 36.64% 득표만으로도 승리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이인제 후보가 신한국당을 탈당해 3자 구도로 바뀌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40.27%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당 관계자는 “어느 후보나 충분한 설명 없는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대권만 생각하는 전술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27일 광주를 찾아 “100만, 200만 명 모인 민심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이렇게 모인 마음은 대통령을 바꾸라는 것을 넘어서 국가를 바꾸라는 요청”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로 규정하고 기득권 타파를 중장기적 목표로 내세운 것이다. 특히 여야의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 진영을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동시에 나머지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4·13총선 당시 통했던 구호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비상시국강연회에서 “이번 기회에 부패 기득권을 척결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및 독립성 강화 등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안 전 대표는 촛불집회를 ‘11·12 시민혁명’으로 규정한 뒤 “여기까지 온 건 부끄럽게도 정치권이 아니다. 국민들이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는 이 시기에도 우리 국민들은 계속 현명한 선택을 해 왔다”고 자성했다. 그는 또 “도널드 트럼프는 저랑 같은 와튼스쿨 동문”이라며 “그 학교를 통해 알아본 결과 이제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최소한 미국에서는 대한민국의 대표로, 외교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안 전 대표의 이날 광주 방문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안 전 대표를 앞선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 주자들이 잇따라 호남으로 향하자 텃밭 사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이날 강연회에서 “박 대통령만 퇴진하면 국민 4999만9999명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촛불집회에서는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청와대에서 공갈을 친다고 한다”며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청와대에서 ‘충성하겠느냐’고 묻는 게 관례인데, 그때 한 말과 쓴 편지를 갖고 ‘더 이상 박 대통령을 무섭게 수사하면 그것을 공개하겠다’고 공갈을 친다고 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유근형 기자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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