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190만 촛불’]평화시위 이끈 성숙한 시민의식
경찰과 대치중 폭력행위 저지… 과격발언 시위자엔 “내려와”… 의경들에게 간식 건네주기도
靑 진입 시도 4명 軍에 검거돼
“작은 촛불 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도 많아 (중략)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
26일 청와대를 불과 400m 남겨 놓은 서울 종로구의 촛불집회 현장. 반짝이는 촛불 속에 그룹 god의 노래 ‘촛불 하나’가 울려 퍼졌다. 역대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모인 이날 집회에서 다섯 번째 촛불 역시 평화 속에 타올랐다. 연행자와 부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평화 속에 타오른 5번째 촛불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200m 앞이 시위대에 열렸지만 이날도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절제된 분노를 표출했다. 술에 취하거나 흥분한 일부 참가자가 조금이라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면 “평화시위” 구호를 위치며 자제시켰다. 중년 여성 참가자 두 명은 경찰기동대 버스 위에 앉아 비상 대기하는 의경들에게 간식을 건네기도 했다.
오후 8시 정각 1분간 모든 불과 촛불을 끄는 일제 소등 퍼포먼스를 열 때에는 참가자뿐 아니라 광장 주변의 상점들도 절반가량 동참했다. 곳곳에서 열린 자유발언의 장(場)에서는 발언자를 격려하면서도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자제하는 성숙함이 빛났다. 한 참가자가 ‘병신년(丙申年)’을 언급하며 격한 표현을 동원하자 시민들이 “내려와”를 외치며 중단시켜 결국 발언자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150만 명이 운집했지만 질서를 지키려는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인파로 붐빈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는 출구에서 혼란이 빚어지자 시민들이 “아이 있는 가족부터 나가게 하자”며 서로 양보했다. 광화문광장 곳곳에 설치된 간이화장실에는 긴 줄이 생겼지만 시민들은 짜증내기보다 오히려 화장지 등 개인용품을 서로 나눴다. 박모 씨(30)는 “자신을 공주로 아는 대통령만 이런 곳이 불편할 뿐”이라며 “우리는 오히려 집회가 주는 불편함이 즐겁다”고 말했다.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솔선수범해서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 역시 앞선 촛불집회와 마찬가지였다. 집회 중간에 눈비가 내려 물에 젖은 종이 쓰레기가 바닥에 질척거렸지만 시민들은 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예나 씨(24·여)는 테이크아웃 잔 등을 재활용해 종이컵 쓰레기를 줄이자는 ‘하야 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 일촉즉발 위기에도 부상자·연행자 0명 기적
인간 띠 잇기 행사가 법원 허용 시간을 넘기며 서울 종로구 신교동 사거리에서는 경찰과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뻔한 순간도 있었다. 경찰이 해산을 요구하자 참가자들은 “차벽은 위헌” “불법경찰” 구호를 외치며 도로를 점거했다. 경찰은 오후 6시 30분경부터 이들을 경복궁역 방향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때 일부 참가자가 스크럼을 짜고 저지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돌발행동이 벌어지려 하면 시민들이 “비폭력”을 외치는 등 자제해 물리적 폭력사태로 이어지진 않았다. 오후 11시경 통인동 사거리에서는 시민 20여 명이 맞서고 있던 경찰을 안아주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경찰도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2차 행진에서 청운동 방향으로 시위대가 몰리자 차벽을 당초 계획했던 내자동사거리보다 북쪽으로 물린 통의 사거리에 설치했다. 참가자 김현진 씨(29·여)는 “법원이 정한 집회시간을 넘겨 물리적으로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집회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면서도 “경찰도 이들을 자극하며 폭력시위의 빌미를 줘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조모 씨(34) 등 대구경북민권연대 회원 4명이 북악산을 넘어 청와대로 진입하려다 오후 10시경 군 수도방위사령부에 검거됐다. 이들은 군사기지와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지나가며 페이스북을 통해 진입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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