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전승민]괴담과 과학적 사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8일 03시 00분


월성 1호기.
월성 1호기.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이번 지진 규모는 5.8이다. 원자력발전소(원전) 안전기준이 6.0이라고 하던데, 0.2만 더 큰 것이 왔다면 재앙으로 이어질 뻔했다.”

 며칠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올 9월 일어났던 경주 지진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이야기는 틀렸다. 지진 근원지의 절대적인 힘이 ‘규모’라면, 원전까지 전해진 상대적인 힘이 ‘진도’다. 경주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월성원전은 지반가속도 0.2g(진도 6.0 상당). 지진 당일 원전에 전달된 힘은 0.1g가량으로 절반 정도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안전기준에 거의 육박한 지진이 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문제를 대중의 탓으로만 보긴 어렵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규모와 진도, 지반가속도의 관계를 도표 등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일부 언론사에선 기자들조차 진도와 규모를 혼돈해서 사용해 대중의 혼란을 한층 더 부추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이 모든 정보를 알아서 이해하길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우리 사회는 유독 정치적 혼란이 잦다.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 사거리에선 크고 작은 시위가 없는 날을 찾아보기 어렵다. 원인이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깨끗하지 못한 정치도, 올바르지 못한 기업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기자는 또 다른 원인 중 한 가지로 전문가와 대중 사이의 ‘불통’을 꼽곤 한다. 전문가 집단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들지 않는 사회는 결국 잘못된 정보로 혼란을 겪을 우려가 크다.

 이 문제로 우리 사회는 이미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 왔다. ‘미국 소는 무조건 광우병을 유발한다’는 이야기 때문에 수십만 명의 군중이 광화문광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전자파 때문에 참외가 죽는다’는 근거 없는 우려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 반대운동으로 이어졌다.

 혼란의 이면을 살펴보면 자신의 입장에 따라 정보를 곡해하는, 양심을 저버린 지식인들도 적잖이 보인다. 정보를 독점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지도층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일을 겪은 대중은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의심을 풀기 어렵다. 사회적 혼란을 막는 것은 대중에 대해 과학적인 사실을 주입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전문가 집단은 어떤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할까. 과학기술계에선 철저하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조언한다. 미국과학진흥회(AAAS)는 과학기술인들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3M’을 강조한다. 대중이 기억할 만한(memorable) 중요한(meaningful) 내용을 간략하게(miniature)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 조지아대 과학커뮤니케이터인 마셜 셰퍼드 교수가 22일 ‘포브스’지에 소개한 ‘과학자가 대중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9가지 방법’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듣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전문용어 사용을 피하고 △대화의 요점을 전달하며 △가능한 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중요한 내용을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소통이란 양측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전문가 집단뿐 아니라 대중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실험과 검증을 통해 확인된 결과는 자신의 사상이나 이익과 반하더라도 겸허히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닫힌 마음으로는 아무리 친절한 접근도 거짓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땅의 소통을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시기다. 이 숙제를 풀기 위해선 무엇보다 전문가 집단이 먼저 대중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 손을 잡고 더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국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까.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월성 1호기#지진#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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