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유의 사태’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현직 대통령이 검찰에 의해 ‘공범’과 ‘피의자’로 규정된 것이나, 그 대통령을 겨냥한 탄핵과 특검 수사 모두 헌정 사상 처음이다. 5차례에 걸친 대규모 촛불집회가 모두 평화롭게 진행된 것도 처음 경험했다.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사태에서 처음 겪는 일은 많은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전례가 없으니까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기도 힘들다.
요즘 사태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해도 후속 조치를 곧바로 취할 수 없다는 게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을 대통령 기능이 고장 난 ‘헌법장애상태’라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헌법을 긴급하게 보호해야 할 국가비상사태와는 달리, 헌법 테두리 내의 자연 치유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 농단과 그 책임’이 드러났어도 당장에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킬 방법이 없다.
이런 사정을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토요일마다 거리에서 평화집회를 열며 청와대를 향해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헌정 중단이나 체제 변경 등을 공론으로 내놓지 않아 ‘혁명’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초유의 현상이다.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의 꾸밈없는 목소리와 절제된 행동, 바로 이 대목에서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저녁에 만난 한 전직 고위 공무원은 “비폭력의 절제 속에 담긴 뜻을 받아들여 국가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등을 이끈 ‘전문 시위꾼’을 경멸해온 그였다. 식당 주인과 손님들은 “먹고살기도 바쁜 서민들이 국가 지도자들 대신 고민하고 거리로 나서야 하는 것이 지금의 정국”이라며 혀를 찼다. 다음 날 5차 촛불집회의 메시지에는 전날 식당을 찾은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와 분노, 열망을 담아낸 것으로 보였다.
비폭력 집회의 민심과 국민들의 전략적 인내를 곡해하거나 잘못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초유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게 이번 사태의 또 다른 특징이다. 국정 운영의 한 축인 국회가 제 할 일 팽개치고 거리에서 시민들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하나씩 올려놓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국회마저 기능 작동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그런 위기감을 부추긴다.
사실 국회가 비상시국을 이끌 국무총리만 미리 뽑아 놓았어도 “대통령 즉각 하야” 이후 정국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 기회를 놓친 지금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퇴임 준비까지 했던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아 대통령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또 다른 논란과 혼란이 예상된다. ‘선량한 관리자’여야 할 권한대행의 민주적 정당성이 미약하고, 그 직무 기간에 대한 명문 규정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도 보기 드문 경험이 될 것이지만 민심이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지 의문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따른 외교 풍랑, 침체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한 경제 등 살얼음 같은 현실도 사심 없이 나라를 구할 명민한 국정 조타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처음이기에 두고두고 세인의 뇌리에 남고 헌정사의 선례로 후대가 참조할 것이다. 민심이 대통령과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를 제대로 수렴하면 촛불집회에 소모된 사회적 비용으로 더욱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아갔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다. 반대로 민심을 함부로 이용하면 땀 흘려 이룩한 국가를 나락에 빠뜨릴 수 있다. 특히 지금의 민심을 국가 발전 대신 사당(私黨)의 이익으로 둔갑시키는 세력은 ‘최순실 부역자’만큼 교활하다는 비판과 함께 그 부메랑을 곧바로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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