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저지선이 무너지고 있다. 국회의 탄핵안 처리 시계는 1차로 다음 달 2일에 맞춰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주체적으로 정국 수습에 나설 수 있는 기간이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기에 28일 검찰을 지휘하는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사의(辭意) 의지를 꺾지 못해 사표를 수리하면서 사정기관 컨트롤타워가 붕괴됐다. 정부 균열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중진 의원들이 이날 박 대통령에게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 수용을 선언해 달라고 직접 건의하는 사태를 맞았다. 야당이 개헌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사실상 하야(下野) 불가피성을 강조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회는 이날 박 대통령에 대한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 사실상 아군(我軍)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금명간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친박계도 등 돌리나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은 이날 다른 친박계 중진 의원들과의 비공개 오찬에서 “박 대통령이 탄핵된다면 국가적 대외 신인도에 문제가 생기는 만큼 탄핵 없이 가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전날 국가 원로들이 건의한 ‘질서 있는 퇴진’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취지였다.
이날 한 친박계 핵심 인사도 “오늘(28일) 친박계 재선 의원들이 모였는데, 명예로운 퇴진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뤘다”고 전했다.
하지만 친박계 내부가 의견 통일을 이룬 건 아니다. 이정현 대표는 ‘명예로운 퇴진’ 주장에 “나와는 전혀 상의한 적이 없다. 어떤 배경에서 나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고 선을 그었다. 여권 핵심 인사는 “박 대통령의 자진 퇴진을 주장한 친박계 중진 의원들은 참 비겁하다. 박 대통령을 팔아 권세를 누리고, 힘들 땐 대통령에게 업어 달라고 조른 사람들이 불리해지니까 대통령을 버리려고 한다”며 “(비주류의 인적 청산 대상에) 본인들 이름이 오르내리니 살겠다고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고 날을 세웠다. 친박계가 적전분열(敵前分裂) 양상인 셈이다. ○ 박 대통령의 선택은?
청와대는 ‘기존 태도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헌법 절차를 지키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뜻”이라며 “국회가 탄핵을 하거나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단축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퇴진을 밝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핵심 인사도 “현재로선 박 대통령이 퇴진을 선언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친박계 핵심의 퇴진 주장이 야권의 탄핵 공조를 흩뜨리고 시간을 벌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촛불집회 참여 인원이 5주 연속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민심을 마냥 외면하기는 힘들다는 전망도 나온다. 청와대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탄핵이란 방식으로 물러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법무부 장관의 반발과 국회의 탄핵 압력이 높아지자 결국 하야를 선택했다는 점을 들어 박 대통령이 막판 고심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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