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실, 알아야 이긴다”… 이젠 공부하는 분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9일 03시 00분


시민들, 박근혜 관련 논문-헌법 열공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평화 촛불집회가 5주 연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현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열공’ 모드에 돌입했다. 집회에서 보여준 ‘평화로운 분노’가 ‘공부하는 분노’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관련 논문 검색 수가 배로 뛰는가 하면 헌법이나 역사 관련 서적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온라인에는 외신에 보도된 주요 표현을 갈무리한 글과 함께 “‘박순실(박근혜+최순실)’ 덕에 공부를 다 하게 되는구나”란 조롱 섞인 반응을 올리는 누리꾼도 적지 않다.

 28일 현재 온라인상엔 ‘박근혜 최순실 사건 핵심 요약정리’ ‘최순실 사태, 요약 완벽정리’ 등의 제목을 단 글들이 수백 건 게시돼 있다. 현 상황을 패러디한 각종 풍자 게시물 사이에 ‘사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묻는 글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백과’에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사건의 배경이나 관련 인물 등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좀 더 깊이 있는 자료를 찾아보려고 학술논문을 검색하는 사람도 늘었다. 학술논문 사이트 디비피아(DBpia)에 따르면 박 대통령 관련 논문을 내려받거나 PDF 파일로 조회한 수는 9월 376건에서 10월 795건으로 급증했다. ‘박근혜 화법, 헛소리에 담긴 모순적 징후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용량 기준 9월 6900위에서 10월 550위로 껑충 뛰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융합에 관한 소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리더십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도 순위권에 진입했다. 디비피아 홍보담당 임승희 씨는 “주로 연구자들이 사이트를 이용하다 보니 통상 논문 검색 수치는 변동이 크지 않은데 이번에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시류를 읽어내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책들도 판매가 급증했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탄핵, 국민주권 등의 개념이 재조명되면서 ‘지금 다시, 헌법’(차병직 등)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등 헌법과 국가관, 역사 관련 도서의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블로그나 트위터에도 ‘최순실 사태로 역사카페에 가입을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안 한 역사 공부를 이제 한다’ ‘박근혜-최순실 마피아 집단 때문에 느닷없이 역사 공부 중이다’란 누리꾼들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연일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는 외신을 영어 공부에 활용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영어권 국가로 유학을 준비 중인 백모 씨(24·여)는 “뉴욕타임스 등 외신이 보도한 최순실 게이트 관련 뉴스의 영어 표현을 정리한 글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수두룩하다”며 “공부가 되긴 하지만 나라 망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영어회화 학원에서 최 씨의 검찰 출석을 소개하는 해외 뉴스를 봤다는 한 블로거는 “최 씨가 말한 ‘죽을죄’를 영어로 어떻게 옮기는지 궁금했는데 말 그대로 ‘deadly sin’이라고 하더라”며 “배우는 내내 씁쓸하더라”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대통령이 헌법의 어떤 이념과 가치를 훼손했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며 “무작정 분노하기보다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 뒤 합리적, 이성적 차원에서 대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박순실#박근혜#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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