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29일 3차 대국민 담화 발표는 새누리당 비주류의 ‘탄핵 대오’를 흔들어 놓았다. 당장 탄핵을 주도해 온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의 ‘조기 탄핵’ 명분은 박 대통령의 ‘진퇴 문제 국회 일임’ 발언으로 약화된 게 사실이다. 이틈을 비집고 친박(친박근혜)계는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이젠 탄핵 대신 개헌을 통한 퇴진을 논의하자”고 비주류를 압박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사실상 하야 선언을 했다”고 규정했다. ○ ‘탄핵 강행’ vs ‘개헌 퇴진’으로 갈려
이날 비주류 측은 박 대통령이 담화문을 내놓자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20여 명이 따로 모여 긴급 회동을 가졌다. 발표 직후 예정된 의원총회 참석에 앞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던진 공을 곧바로 걷어차기는 힘들었다는 얘기다.
이후 열린 의총에는 새누리당 의원 80여 명이 참석했다.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은 첫 발언자로 나서 포문을 열었다. 일종의 ‘기선 제압’에 나선 것이다. 서 의원은 “정권 이양의 질서를 만드는 게 박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예우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대통령이 물러나겠다고 한 이상 (탄핵은) 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추진의 열쇠를 쥔 비박 진영을 향한 경고였다.
비주류 측도 밀리지 않았다. 권성동 의원은 “개헌으로 임기를 단축하겠다는데, 반대로 개헌이 이뤄지지 않으면 끝까지 임기를 채우겠다는 소리냐”며 “탄핵은 탄핵대로 가고, 개헌도 개헌대로 가야 한다”고 일축했다. 유승민 의원도 이날 기자들을 만나 “대통령이 퇴진 일정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아 진정성 있는 담화라고 보기 어렵다”며 “여야가 (퇴진 일정 등을) 논의하되 국회에서 합의가 안 되면 결국 헌법적 절차는 탄핵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결국 비주류 측은 이날 의총에서 친박계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여야가 퇴진 일정을 두고 협상하되 결렬되면 9일 탄핵을 강행’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비주류의 키를 쥐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는 이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말을 아꼈다. 탄핵과 동시에 개헌을 강하게 주장해 온 김 전 대표로선 난감한 상황에 처한 셈이다. 김 전 대표가 탄핵 처리 입장을 철회할 경우 비주류 측은 사분오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김 전 대표의 측근은 “야당과의 협상 문제는 별개로 탄핵 처리 입장은 흔들림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야당과의 협상 전권을 부여받는 선에서 의총을 마쳤다. 정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탄핵 논의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지, 원점에서 검토해야 하는지 야당과 논의하겠다”며 “탄핵 카드는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30일에도 의총을 열어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 ‘임기 단축’ 개헌 논의 가능할까
친박계는 이날 스크럼을 짜고 ‘임기 단축 개헌’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당장 야당은 박 대통령의 담화를 “탄핵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일축했다. 여당의 개헌 논의에 협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논의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임기 단축 개헌 요청’은 사실상 임기를 다 채우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이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 개편을 통해 대선판을 흔들려 한다고 보고 말리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이 시기에 개헌을 논의할 수 없다. 지금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퇴진 요구, 탄핵 추진 대열에 혼선을 주려는 정치적 계산”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윤관석 대변인도 “탄핵 국면에서 여당과 (박 대통령의) 퇴진 방안을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문(비문재인) 진영에선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종인 전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이 체제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의 요청이다. 체제를 바꾸려면 개헌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개헌 논의가 촉발되면 야권의 분열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개헌 공방이 격화되면 친문과 비문 진영이 갈라서고, 이로 인한 정계 개편의 폭발력이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개헌 논의가 흐지부지되고 다음 달 9일 탄핵 처리를 강행할 경우 새누리당은 분당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이날 의총에서 친박계 윤상직 의원은 “경우에 따라 (탄핵을) 계속 하려면 이혼하는 것도 괜찮다”며 “보수끼리 경쟁해서 다시 모이는 것도 (대선에서 이기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탄핵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 다만 이 경우 국민적 분노가 국회로 향할 수 있다는 점을 여야 모두 의식하고 있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막상 탄핵안을 두고 표결에 들어가면 촛불 민심을 의식해 숨은 찬성표가 더 나올 수 있다”며 “부결보단 가결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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