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 대통령 퇴진, 6월 말 대선’ 당론 채택에 동참했던 새누리당 비주류가 다시 탄핵 대열에 올라섰다.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가 4일 탄핵이 좌초될 경우 비주류가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박근혜 대통령의 4월 퇴진 공식 선언이 나와도 9일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기로 선회한 것이다.
○ 갈지자 행보 거듭하는 비주류
비상시국회의는 이날 4시간 가까이 대표단-실무단 연석회의와 총회를 잇달아 열고 격론 끝에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게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무위원장인 김재경 의원은 “국민의 뜻은 즉각 하야나 탄핵”이라며 “(비주류가) 왔다 갔다 한 부분이 있는데 판단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탄핵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비주류는 박 대통령이 4월 퇴진을 선언할 경우 여당이 이를 이끌어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공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주말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분위기를 바꿨다. 한 비박(비박근혜) 중진은 “탄핵이든 즉각 하야든 국민 요구를 못 받아들이면 그 책임을 새누리당이 죄다 덮어쓰고, 그중에도 비주류가 더 덮어쓰니까 우리는 살길이 없다”고 했다.
이날 총회에서도 여야 협상 가능성이 낮은 만큼 탄핵 불가피론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유승민 의원은 “대통령이 (4월 퇴진 등) 도움 주는 말씀을 하더라도 지금 안 되는 여야 협상을 잘되게 하는 효과 정도”라며 “여야 합의가 안 되면 탄핵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통령의 ‘4월 퇴진, 2선 후퇴’ 선언 시한으로 밝힌 7일 오후 6시 이전에 대통령이 면담을 요청해 와도 거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병국 의원은 “즉각 하야가 아닐 바에야 (면담이) 교란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9일 탄핵 가결 쪽으로 기우나
비주류가 탄핵 표결 방침을 명확히 하면서 야 3당의 탄핵 추진도 탄력을 받게 됐다.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려면 여당 찬성표가 최소 28표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날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의원은 29명이다.
지난달 30일 동아일보가 비상시국회의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31명 중 여야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9일 탄핵안을 처리할 경우 찬성이 14명(45.2%)이었고, 15명(48.4%)은 판단을 유보하거나 응답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날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29명 가운데 대부분이 탄핵 찬성으로 기울었으며 일부는 이견이 있었다고 한다. 비상시국회의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이견은) 의원 2, 3명 정도였고 나중에 토론을 거쳐 이의가 없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뜻을 모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황 의원은 ‘표결 동참이 찬성을 뜻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다만 의원들의 찬반 여부는 헌법기관으로서 개인의 권한이라 동참이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한 비박계 재선 의원은 “탄핵 표결 참여에 물꼬를 텄기 때문에 9일까지 중간지대 의원들을 상대로 동참을 이끌어낼 여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반면 탄핵안 가결을 단정하긴 힘들다는 관측도 있다. 박 대통령이 어떤 카드를 추가로 내놓느냐가 변수라는 것이다. 이날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한 의원은 “참석자들이 모두 탄핵에 찬성했으면 공식 입장을 ‘표결 참여’가 아니라 ‘탄핵 찬성’으로 내지 않았겠느냐”며 “9일에 찬성표를 던질지 대통령의 메시지에 달린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14명의 향배도 지켜봐야 한다.
‘4월 퇴진’ 당론이 사실상 파기되면서 새누리당은 혼란에 휩싸였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비주류가 어차피 도도한 민심을 역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집단으로 (탄핵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한 친박 중진은 “박 대통령이 어떤 형식으로든 주초에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였는데 이와 별개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청와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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