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하]국회선진화법과 협치(協治)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6일 03시 00분


정부안 ‘자동 상정’ 명시한 국회선진화법 무서워… 400조 슈퍼예산안 통과
여당의 독주 어렵고 ‘협치’하면 상생의 길 보여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2017년도 국가예산안이 3일 새벽 국회를 통과했다. 400조 원 슈퍼예산안이라고 해서 논란은 있지만 법정 기일 내 통과된 것은 2015년도와 2016년도에 이어 3년째다. 정치 경제적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현 시점에서 내년도 나라살림이나마 확정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가 있다. 2013년도와 2014년도 예산안은 법을 어기고 새해를 넘겨 통과되었고, 그 이전에도 제대로 기일을 지켜서 통과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7년도 국가예산안이 법정 기일을 어기지 않고 통과된 것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말도 많은 2012년에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이 있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매년 12월 1일 이전까지 국회 차원의 국가예산 조정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정부가 제안한 예산안이 자동 상정되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여야가 다소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 해도 합의하지 않으면 그나마 국회 심의 내용이 전혀 반영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라도 합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법체계가 예산안 파행을 막고 합의를 압박한 셈이 된다.

 그동안 국회선진화법이 비난을 받아 온 것은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법규정 때문이었다. 이 규정 때문에 국회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는 법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어 19대 국회가 식물국회로 비판받는 중요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19대 국회에서 다수당이었던 새누리당 입장에서나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회 장벽에 가로막혀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 어떤 정책도 제대로 입법하지 못했다.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고 한때 국회선진화법의 폐기를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쟁점 법안이기 때문에 야당의 동의 없이는 통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20대 국회가 구성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정부 여당인 새누리당 의석수는 128석에 불과하고 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당과 무소속 의원수가 172석이 된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없었더라면 야당이 법안과 예산안을 모두 좌지우지할 수 있었겠지만 180석에 못 미치는 야당 역시 여당의 협조 없이는 어떤 법안도 쉽게 의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직 선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2017년 중에는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쪽에서 대통령이 나온다 해도 대통령과 여당이 일방적으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대 국회를 시작할 때는 여야 불문하고 19대 국회의 반성과 20대 국회의 각오가 쏟아지더니 20대 국회의 첫해가 마무리되는 현 시점에서 19대 국회와 달라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해야 국회가 제 기능을 할 것 같지만, 현 시점에서 국회선진화법 폐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회선진화법 폐기를 주장한 새누리당이 이제는 국회선진화법을 지켜야 할 판이 되었고, 무소속까지 모두 합해도 180석이 안 되는 야당도 이제는 폐기하고 싶겠지만 현재 야권의 의석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도 또 19대 대통령이 새로 취임해도 국정 표류가 계속될 것인가. 반드시 그렇게 기정사실화할 필요는 없다.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는 ‘협치’에 있었다. 법 개정 당시의 협치의 정신은 망각하고 여전히 대결 국면만 조성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와 같이 국정이 파행된 것이다. 2015년 5월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여야가 합의한 것은 협치의 상징이 될 만했지만, 청와대의 반대로 한 달간 혼란을 겪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 당시 국회가 어렵사리 조성한 협치의 기조가 이어졌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웠던 5대 국정 개혁도 바람을 타고 성과를 냈을 것이다. 현재의 지역과 계층구도 등을 볼 때, 어느 쪽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그리고 21대 국회에서도 60% 이상의 절대적 지지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이나 다수당도 반쪽 조금 넘는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와 ‘협치’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협치의 과정은 쉽지 않다.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도 양보해야 한다. 그렇지만 민주적인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협치를 가볍게 생각한 정부가 당면한 현재의 정치적 현실이 협치의 중요성을 이미 방증하고 있다. 새롭게 만들어질 국가 리더십도 적어도 협치의 묘를 알고 협치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참으로 통합된 국민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국가예산안#슈퍼예산안#국회선진화법#20대 국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