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 전 대통령 지원으로 설립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해체 위기를 맞았다. 해체의 화살은 이 단체를 처음 만든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쏘았다.
이 부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6일 ‘최순실 국정 농단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혔다.
전경련은 국내 600여 개 기업으로부터 매년 400억 원가량 회비를 걷는다. 회원사 중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이 200여억 원을 내고 있다. 삼성은 전체 회비의 20∼25%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주요 기업의 탈퇴는 다른 대기업의 연쇄 탈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조직 와해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경련은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경제재건촉진회’라는 이름으로 발족했다. 이병철 당시 삼성물산 사장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독대한 직후였다. 경제재건촉진회는 그해 8월 조직 문호를 개방하며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1968년 전경련으로 또다시 변신했다.
전경련은 그동안 한국 경제 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했지만 정경유착의 고리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전경련이 일해재단 자금을 주도적으로 모금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르 및 K스포츠재단 모금 주체로 나섰다.
이날 청문회에서 기업들의 전경련 탈퇴까지 거론된 것은 정경유착을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정치권은 물론이고 재계 내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전경련과 선을 긋겠다고 밝힌 총수는 이 부회장이다. 그는 이날 오전 1차 질의에서 “이 자리에 선배 회장님들도 계시고 전경련 직원도 계시기 때문에 제가 전경련 자체에 대해 말씀드릴 자격은 없다”면서도 “저는 개인적으로 전경련 활동을 안 하겠다”고 입을 뗐다. 이어 오후에는 “전경련 회비 납부를 중단하라”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추가 질의에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회장은 이후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전경련 탈퇴 필요성에 관한 의견을 피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이 주도한 미르재단 및 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논란이 된 9월에 이미 ‘전경련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수뇌부에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삼성그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시절부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국정조사가 전경련 탈퇴의 자연스러운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말을 아끼던 다른 그룹 총수들도 전경련 탈퇴 의사를 잇달아 밝혔다. 총수들은 다만 전경련 조직을 완전히 없애기보다는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경제 전문 연구기관 역할만 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구 회장은 “전경련은 미국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고 각 기업 간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도 전경련 해체에 대한 질문에 “환골탈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회원사와 전문가 의견을 들어본 뒤 앞으로 어떻게 나갈지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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