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어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최 씨가 대통령과 굉장히 가까운 관계라 이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기획한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올 때마다 최 씨로부터 “VIP가 갈 것”이라는 연락을 미리 받았다고 한다. 그는 “최 씨가 문화창조나 콘텐츠와 관련해 내 생각을 좀 써달라고 해서 써준 적이 있다”면서 “그 내용 중 몇 부분이 대통령 연설에 포함돼 나온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 씨의 요청을 받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추천했는데 관철이 됐고, 김상률 교육문화수석도 추천했다”는 말도 했다. 그간 보도된 내용 그대로 최 씨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음을 입증하는 증언이다.
증인으로 나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예상대로 “모른다”로 일관했다. 김영한 전 대통령민정수석이 작성한 비망록 내용들조차 “작성자의 주관적 생각이 가미됐다”며 부인했다. 그는 “최순실 씨를 알지 못한다”는 기존 입장도 되풀이했다. 최순실이란 이름조차 이번 사태가 터진 뒤 알았다고 주장했다가 여야 의원들의 끈질긴 질문 공세에 “(그 전에) 이름은 알았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일조차 대통령 대면보고를 하지 않았고 대통령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해야 할 비서실장으로서의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 청문회는 몸통인 최 씨를 비롯해 우병우 전 민정수석,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 핵심들이 빠져 ‘맹탕’이었다. 국조특위는 최 씨에게 동행명령장까지 발부했지만 끝내 최 씨는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최 씨를 알지 못한다는 김 전 실장 말은 물론이고 차 전 단장이 최 씨의 소개로 김 전 실장을 만난 경위 등도 검증이 안 됐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횡령 의혹을 받고 있는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는 “센터 설립 지원서를 최순실 이모의 지시로 김종 전 문체부 차관에게 냈다”고 했는데, 김 전 차관은 대부분의 의혹에 입을 굳게 닫았다. 국조특위는 19일 5차 청문회 때는 최 씨와 우 전 민정수석 등을 반드시 증언대에 세워야 한다.
대부분 의원들은 그제 재벌 총수 청문회에서처럼 새로운 진실은 캐내지 못하고 호통 조롱 면박을 쏟아냈다. 질문도 언론보도 내용을 재탕하는 수준이어서 준비 부족을 드러냈다.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김 전 실장에게 “당신은 죽어 천당 가기 쉽지 않을 것”이란 막말도 했다. 국정감사 국정조사 청문회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 본업에 소홀했던 국회의원들은 언론 보도와 촛불 민심에 숟가락만 얹고 있다. 청문회를 보여주기 위한 ‘대(對)국민 쇼’로 만드는 의원들이야말로 탄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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