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400m 계주 결승전.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자메이카 팀 4번 주자 우사인 볼트보다 오히려 2등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100m 개인 최고기록이 9초대인 선수가 한 명도 없던 일본팀이 그 주인공이었다. 저스틴 게이틀린, 타이슨 게이 등 스타 선수로 무장한 우승 후보 미국팀을 제치고 은메달을 따낸 장면은 기적처럼 여겨졌다.
“반 년 내내 바통터치만 연습했다”라는 일본 선수들의 말 속에 비결이 있었다. 부드러운 바통터치로 4명의 100m 합산 기록보다 2.78초나 줄였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찰떡같은 호흡으로 개개인의 부족함을 메운 것이다.
바통 인계 구역에 있는 요즘 ‘팀 코리아’의 모습은 이와 대조적이다. 비틀비틀 느릿느릿 들어오는 앞 주자는 도통 바통을 넘겨줄 생각이 없다. 뺏어서라도 바통을 넘겨받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받자마자 전력 질주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아니 설사 부결되더라도 국민의 마음속에서 지워진 박근혜 정부의 수명은 이미 끝났다. 이제는 끌어내리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정부를 이어받아 새로운 밑그림을 그릴지가 중요해졌다. 과거 대선 후보 경선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까지 1년에 걸쳐 이뤄졌던 과정을 반 년 만에 속성으로 진행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다.
무엇을 새로 세워야 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차기 정부의 일성은 ‘박근혜 흔적 지우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정부 공식 문서에서 현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 온 ‘창조’ ‘융성’ 등의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왕조시대 왕의 이름을 피휘(避諱)하듯 다른 글자로 대체될 것이다. 이번엔 불명예 퇴진이어서 그 과정은 더욱 가혹하고 철저하게 진행될 가능성도 크다.
기자가 취재를 주로 하는 국토교통부도 좌불안석이다. 박 대통령이 업무보고 때마다 챙겼다는 ‘행복주택’,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스마트시티’의 운명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국민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 등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브랜드의 주거 정책이 나왔지만 대부분 정권과 생명을 같이했다. 뉴스테이 사업 초기에 대형 건설사들이 참여를 주저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식으로 국정을 처리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매번 유통기한 5년짜리 정책이 양산된다면 사회적 혼란과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물론 국정 농단 세력이 깊이 관여된 정책과는 과감히 손을 끊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산업 구조조정, 미래 먹을거리가 될 성장 동력 창출 등의 시급한 현안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중단 없이 진행돼야 한다.
리우 올림픽에서 일본팀에 이어 3위로 들어온 미국 팀은 한 번 더 굴욕을 맛본다. 바통 터치 실수로 실격 처리되며 동메달마저 날렸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개인 기록도 좋지 않은 우리 정치권이 바통마저 떨어뜨린다면…. 5년마다 되풀이되는 ‘바통터치의 저주’를 이번에는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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