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별수사본부가 11일 공개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구속 기소)의 휴대전화 녹음파일과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7·구속 기소)의 업무 수첩에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60·구속 기소)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7월 청와대에서 조원동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60·불구속 기소)에게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에서 물러나고 이미경 부회장은 CJ그룹 경영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취지로 지시했다”며 박 대통령을 강요미수 혐의 피의자로 추가 입건했다. CJ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 등 정권에 껄끄러운 콘텐츠를 만들자 박 대통령이 경영진 퇴진을 지시한 것이라는 게 검찰의 잠정 결론이다.
○ 정호성 휴대전화와 공용 G메일로 기밀 유출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은 검찰이 10월 29일 정 전 비서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때 확보한 휴대전화 8대와 태블릿PC 1대에서 나왔다. 이 중 스마트폰 1대와 폴더폰에서 녹음파일 총 236개가 복구됐다. 박 대통령 취임 전 녹음파일이 224개(약 35시간 36분 2초), 취임 후 녹음파일이 12개(약 28분 34초)다.
박 대통령 취임 전에 정 전 비서관과 최 씨가 대화한 것이 녹음된 파일은 3개, 47분 51초 분량이다. 또 취임 전 박 대통령과 최 씨, 정 전 비서관이 만나 나눈 ‘3자 대화’가 녹음된 파일은 11개, 5시간 9분 39초 분량이 확보됐다. 대통령이 등장한 녹음파일은 주로 대통령 취임사를 준비하는 내용이었다. 취임 후에는 정 전 비서관과 최 씨 간 대화 파일이 8개(16분 10초), 정 전 비서관과 박 대통령이 나눈 대화가 4개(12분 24초) 녹음돼 있었다. 정 전 비서관은 최 씨를 ‘선생님’이라 불렀고, 최 씨는 2013년 10월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앞두고 “해외 순방을 자주 다닌다는 얘기가 있어 놀러 다닌다는 이미지로 비칠 수 있다.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고 가자”는 취지로 정 전 비서관에게 말했다. 최 씨가 박 대통령의 청와대 회의 발언 내용과 수위까지 주문한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대선 전부터 공유하던 G메일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하면서 최 씨에게 문건을 넘겼다. 초대 행정부 조직도와 조각(組閣) 명단,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감사원장 고위직 인선 자료, 대통령 순방 자료 등이 무차별적으로 최 씨에게 흘러갔다. 분량은 △2012년 30건 △2013년 138건 △2014년 2건 △2015년 4건 △2016년 6건이 넘어갔다. 박 대통령 본인이 정 전 비서관과 공모해 국가 기밀을 비선 실세에게 줄줄이 유출하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박 대통령은 정윤회 씨에 대한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직후인 2014년 12월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라고 말했다.
검찰은 “두 사람(최 씨와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 취임 즈음인 2013년 2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총 895회 통화와 1197회의 문자를 주고받을 정도로 긴밀하게 연락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드러난 최 씨와 정 전 비서관의 유착 정황에 비춰 보면 최 씨와 정 전 비서관의 통화는 2014년 12월 이후에도 지속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핵심 증거인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은 총 17권이 검찰에 입수됐다. 크기는 손바닥만 하고 권당 30쪽(총 15장) 정도로, 17권을 모두 합하면 총 510쪽 분량이다. 작성 기간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다. 안 전 수석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나 티타임 회의 등 일상적인 회의는 수첩의 앞에서부터 날짜 순서대로 적었다. 박 대통령의 지시 사항은 수첩의 뒤에서부터 역방향으로 기록했다. 제목은 ‘VIP’로 돼 있고 날짜를 적었다.
○ 김기춘 우병우 본격 수사 특검으로 넘겨
검찰은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자금의 성격과 관련해 박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지 등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이날까지 수사한 결과를 특검으로 넘겼다. 또 최 씨의 국정 농단을 알고서도 묵인 또는 방조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해 진행하던 검찰 수사도 특검에서 마무리하게 됐다. 검찰은 이날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대해 2015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압박해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37·구속 기소)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 원을 후원하도록 압박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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