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탄핵 정국의 폭풍이 몰아친 지난 주말, 지구 반대편 스웨덴에서는 노벨상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문학 부문 수상자 밥 딜런은 예정대로 불참했다. ‘육신은 가지 못하여도 정신은 여러분과 함께한다’로 시작하는 수상 연설을 현지 미국대사가 대독했다.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 ‘폭우가 닥쳐온다’를 동료 가수가 불렀다.
노벨 문학상에서 수상자가 시상식에 불참한 경우는 몇 번 있었으나 다들 일신상의 절박한 사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이번처럼 유별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이번처럼 문학상이 합당하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던 63년 전 수상자 윈스턴 처칠도 시상식에 불참했지만 그를 괴짜로 보는 시선은 별로 없었다. 그해 1953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재건 작업이 한창인 시기여서 그 주도자인 영국 총리가 자리를 비우지 않는 편이 세상에 더 유익하다고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시상식에는 부인이 대신 참석했다.
수상자 없는 시상식장에 울려 퍼진 노래 ‘폭우…’는 53년 전에 나온 곡이다. 음울한 묵시록적 분위기로 가득한 22세 청년의 가사가 단조로운 멜로디에 담겨 녹음되던 1962년 이맘 때, 미국은 쿠바 미사일 사태라고 하는 일촉즉발의 핵 위기를 가까스로 헤쳐 나온 직후였다. 다음 해 발매된 이 음반으로 딜런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던 1963년의 가을, 각광받던 미국의 젊은 대통령은 자국민의 손에 암살되었다. 그 케네디 대통령을 예방했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한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지 5주 만이었다. 졸지에 청와대로 이사하게 된 박근혜 영애의 나이 열한 살 때였다.
전쟁의 여파로 인간의 생활 기반 자체가 도탄에서 헤어나지 못한 전후시대에 노벨 문학상은 비문학인에게 돌아갔다. 문학이 도탄에 빠지고 대중이 혼돈에 빠져 있는 올해에 다시 문학상은 비문학인에게 돌아갔다. 처칠의 회고록이 문학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은 그야말로 비문학적인 시대의 문학적인 논란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딜런의 경우처럼.
63년 전처럼 올해 노벨 문학상은 문학권의 바깥에서 문학성을 찾아보려 했다. 그 결과는 당혹스럽게도 ‘바람에 실려 온 대답’이었다. 노벨상위원회가 이번에 뜻하지 않게 경험한 것은, 문학이 문학 바깥에 의존할 때 어떤 대접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우화적 교훈 같은 것이었다.
관록의 노벨상위원회가 최근 대면한 것은 문학의 아노미 상황일 것이다. 문학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문학의 수요자인 대중이 어디에 있는지. 짧은 정치사의 한국이 지금 직면한 것은 정치의 아노미 상태이다. 제 위치에 있어야 할 것들이 죄다 제 위치를 이탈한 상태.
전쟁이 끝나고 가까스로 대한민국 정부가 서울로 돌아온 63년 전 이승만의 자유당 시절. 이승만 하야로 민주공화국 만세를 외쳐 부르던 광장의 군중 이후 출범한 53년 전 민주공화당과 박정희 장기 집권. 가까운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지금 우리 정치의 주소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또 폭우가 닥쳐올 것인가. 노벨상위원회는 나타나지 않는 문학상 수상자에게 의무사항인 기념 강연만은 6개월 내에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6개월 내의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는 한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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