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회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국정이 안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도 “마침 정치권에서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제안해 민생을 살리고자 하는데 잘 검토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의장이 협조를 약속하는 모습은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회 주도권을 쥔 야권의 태도를 보면 제대로 협조가 이뤄질 것 같지가 않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 권한대행을 계속 ‘총리’로 지칭하며 “황 총리는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과 함께 사실상 정치적 불신임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헌법과도,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억지 발언이다. 헌법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총리가 권한을 대행한다고 명시했다. 추 대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때 고건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던 사실을 잊었는가. 더구나 거국내각 구성을 거부해 ‘황교안 체제’를 유지시킨 건 야당이었다.
민주당이 “얌전히 국회의 뜻을 받들라”며 황 권한대행을 상대로 군기를 잡으려는 데 박수칠 국민은 많지 않다. 야당이 황 권한대행의 국정 운영을 발목 잡아 나라를 망할 정도로 만들어야 차기 대선에 유리할 것으로 믿는다면 국민의 불행이다. 이번 기회에 야당이 국정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황 권한대행도 20, 21일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에 대해 “헌법상 대통령은 출석 대상이 아니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출석한 전례도 없다”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주면 좋겠다. 지금 국민은 황 권한대행이 어떻게 국정을 이끌고 갈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국무총리도 겸하는 행정부 책임자 자격으로 국회에 나가 국민을 대신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형태로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밝히면 될 것이다. 같은 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국회를 무시하면서 몰락의 길을 갔던 박 대통령의 전철을 따르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 것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행정부 수반이 적극적으로 국회를 찾고, 여야 의원들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것이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만든 총선 민의이고, 협치다.
여당 원내대표의 부재로 당장 가동하기는 어렵지만 여야가 합의한 여야정 협의체 운영에도 황 권한대행은 적극성을 보였으면 한다. 야권이 여당을 뺀 야 3당 대표와 황 권한대행의 회동을 제의한 것도 형식에 다소 문제가 있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금 황 권한대행 처지에서 야권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꾸려 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비상시국이면 황 권한대행도, 국회도 비상하게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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