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공백 사태’ 속에서 14일 열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정세균 국회의장 간 회동은 협치에 대한 원론적인 공감대만 확인한 채 끝났다. 야권이 ‘황교안 체제 길들이기’에 나선 가운데 황 권한대행도 순순히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미묘한 대립구도가 형성돼 있다. 여기에 여당은 내분 상태여서 당분간 실질적인 협치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오후 1시 58분 국회 본청에 도착해 정문에서 기다리던 진정구 국회사무처 입법차장의 안내를 받아 국회의장 접견실로 이동했다. 지난달 8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방문 당시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이 하차 지점부터 영접한 것에 비하면 의전의 격이 낮다. 국회 관계자는 “평소 국무총리가 국회를 방문할 때는 영접을 하지 않는데 대통령과 총리 중간 정도의 의전을 갖추기 위해 고심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황 권한대행을 접견실 앞에서 기다리다 인사를 나눴다. 이어 오후 2시 접견실에 함께 입장해 모두 발언을 한 뒤 2시 6분부터 2시 34분까지 28분간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정 의장과 황 권한대행은 비교적 활발히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황 권한대행은 “정부 관료들은 의원들과 달리 소통하는 방법이 미숙하다. 정 의장이 소통을 잘하시는 분이니 잘 배우겠다”며 국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장 측은 “황 권한대행이 국회와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12일 정 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의장이 그냥 얼굴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날 협치 방안에 대한 진전은 없었다. 야당은 연일 황 권한대행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황 권한대행 체제 초반에 확실하게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황 권한대행을 계속 ‘황 총리’라고 호칭하면서 “마치 (탄핵) 가결을 기다린 사람처럼 대통령 행세부터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황 권한대행의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과 관련해 “국회를 무시하면서 몰락의 길을 갔던 박근혜 대통령의 전철을 따르지 않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황 권한대행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당 지도부가 사실상 공백인 상태에서 야당과 협의를 한다면 일방적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국회 대정부질문에는 불출석 의사를 전했고, 야 3당 대표와의 회동에도 부정적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국회와의 협치는 필요하지만 여당 없이 야당하고만 협의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야권도 여당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여야정 협의체가 가동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여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되면 국회 상황이 안정돼 더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이날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국민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지만 구성원 자체의 성격상 구성이 참으로 난망하다”며 “당분간은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황 권한대행은 전날 학계·언론계 원로를 만난 데 이어 이날 고건, 이홍구,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사회 원로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경험이 있는 고 전 총리는 2003년 4당 국정협의체를 통해 이라크 추가 파병 등 현안을 처리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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