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간부들을 사찰해 삼권분립을 훼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최순실 씨의 전남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 씨가 수억 원을 받고 부총리급 인사에 개입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15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서 나온 이 같은 ‘폭탄 증언’으로 관련 기관은 발칵 뒤집혔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이날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2014년 세계일보가 ‘정윤회 동향’ 문건과 함께 입수한 청와대 문건 17건 중 보도하지 않은 8건의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조 전 사장은 “양 대법원장과 최성준 전 춘천지법원장(현 방송통신위원장)의 사생활을 사찰한 문건이 있다”고 밝힌 뒤 관련 문건 2건을 국조특위에 제출했다. 이 문건에는 ‘양 대법원장이 매주 금요일 오후 일과 시간 중 등산을 떠난다’는 보도가 나온다는 소식에 대법원이 당혹스러워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다른 문건에는 최 위원장이 2014년 춘천지법원장 시절에 관용차를 사적으로 썼고 대법관 진출을 위한 운동을 했다는 내용 등이 기록돼 있다. 법조계 인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친분이 있는 소설가 이외수 씨를 이용했다는 대목도 있다.
조 전 사장은 “이 문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해 2014년 1월 ‘정윤회 동향’ 문건과 함께 대외비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복사 방지를 위한) 워터마크가 있고, 파기 시한이 명기돼 있는 것으로 볼 때 국가정보원 문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계일보도 이날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일상적인 사찰이 실제 이뤄졌다면 실로 중대한 반(反)헌법적 사태”라며 “책임 있는 관련자들이 경위를 명확히 해명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한낱 동향보고에 불과한 문건에 강하게 대응한 것은 사법부의 독립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대내외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씨는 트위터에 “청와대가 작가를 불법 사찰도 하는군요. 나랏일들이나 제대로 좀 하시잖고”라고 비판했다.
조 전 사장은 이날 또 “부총리급 공직자의 임명과 관련해 정윤회 씨가 7억 원 정도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맞느냐”라는 질문에 “그렇게 전해 들었다”고 답했다. ‘정윤회 동향’ 문건에 “정윤회에게 (인사) 부탁을 하려면 7억 원 정도를 줘야 한다”는 부분이 담겨 있어 따로 취재한 결과 관련 내용을 접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부총리급 공직자’가 “현직에 계신 분”이라고 했지만 해당 인물을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정부가 임명하는 공직자 중 현직 부총리급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이준식 사회부총리(2016년 1월 임명), 황찬현 감사원장(2013년 12월 임명) 등 3명이다. 감사원은 황 감사원장에게로 시선이 쏠리자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무책임한 의혹 제기가 있는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즉각 반박했다. 조 전 사장도 이후 “(황 감사원장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조 전 사장은 당시 보도하지 않은 나머지 6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취재팀으로부터 구두보고를 받았다”며 “(박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가족의 불법 청탁과 이권 개입 등 비위 사실, 대기업의 비리를 사찰한 문건”이라고 말했다. 또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손쉽게 돈을 내놓은 것은 (청와대가) 대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찰을 벌였고 이를 활용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 전 사장의 폭로는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미확인 정보인 만큼 사실관계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일보는 이날 “조 전 사장이 취재팀이 확보한 문서를 개인적으로 입수해 ‘보도 외 목적’으로 활용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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