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펼쳐진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와 비주류 간 첫 정면대결은 친박 측의 ‘신승’으로 끝났다.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 지도부의 ‘윤리위원 충원’ 사건으로 중립지대 의원들의 표심은 비주류로 기우는 듯했다. 하지만 16일 친박계가 조직적으로 지원한 정우택 의원(4선·충북 청주상당)이 원내대표에 당선되며 비주류는 당내 공고한 벽을 거듭 실감해야 했다. 친박계는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반면 비주류는 탈당이냐 잔류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 ‘탄핵풍(風)’ 속 비주류 패인(敗因)은?
정우택 신임 원내대표는 전체 의원 128명 중 119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62표를 얻었다. 탄핵안 반대표(56표)보다 6표를 더 얻은 것이다. 비주류가 내세운 나경원 의원은 탄핵안 찬성표(최소 62표)보다 적은 55표를 얻는 데 그쳤다. 탄핵에 찬성했던 중립 성향 일부 의원이나 무효(7표) 기권(2표)을 선택했던 의원 중 일부가 친박 후보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선거에 불참한 9명 가운데 6명은 비박(비박근혜) 진영이거나 중립 성향으로, 이들이 모두 나 의원을 지지했어도 승부를 뒤집기는 쉽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는 비주류에게 비교적 유리한 여건이었다. 탄핵안 가결로 비주류가 기세를 올리고 있었고 박 대통령의 징계를 막으려는 친박계의 ‘윤리위 파문’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명 안팎의 중립 성향 의원 중 절반은 ‘보수의 화합’을 방패로 삼은 친박의 전략에 흔들렸다. 이정현 대표가 14일 “당을 나간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읍소한 데 이어 조원진 최고위원이 전날 지도부 총사퇴를 공언한 게 표심에 작용한 셈이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전날 초선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비주류의 ‘자책골’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비주류의 ‘집단 탈당’ 엄포가 되레 안정과 화합을 선호하는 중립 의원들에게 역풍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친박 공격에만 열을 올렸을 뿐 개혁의 비전이 부재했다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비박 3선의 김영우 의원은 “국민들은 탄핵 국면에서 불안감이 큰 게 현실인데 비주류는 ‘친박 5적’이니 ‘8적’이니 했으니 이것도 구태가 아니었는지 자문한다”고 말했다. ○ 비주류, 탈당이냐 잔류냐
난파 위기에 놓인 새누리당의 원내사령탑이 된 정 원내대표는 1996년 15대 총선 때 자민련 소속으로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해양수산부 장관, 충북도지사, 국회 정무위원장 등을 지냈다. 러닝메이트인 이현재 신임 정책위의장(재선·경기 하남)은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사를 지내며 친박계로 분류되지만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는 찬성 입장을 공개 표명하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개헌 정국을 이끌어 내년에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또 “사즉생(死則生·죽으려 하면 산다)의 마음으로 새누리당을 한번 살려보자. 여러분과 함께하겠다”며 울컥하기도 했다. 이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지도부는 이날 오후 총사퇴로 바로 호응했다.
한동안 당 대표 권한대행까지 맡게 된 정 원내대표는 탈당과 잔류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비주류의 반발을 잠재워야 하는 무거운 짐을 안게 됐다. “비상대책위원장은 중도와 비주류에서 추천하는 인물이 되는 게 합리적이다”, “(책임 있는 친박을) 찾아뵙고 2선 후퇴를 정중히, 강력히 요청하겠다”는 발언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탈당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친박계의 승리에 “이것이 새누리당의 민낯”이라며 “비박도 더는 좌고우면하지 말라”고 추가 탈당을 압박했다. 패배한 나 의원은 ‘탈당을 고려하겠느냐’는 질문에 “일단 논의해 보겠다”고만 했다. 그는 이날 표결에 앞선 토론에서 패배할 경우 승복과 탈당 여부를 묻자 “사실 저는 당이 깨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을 어떻게든 고쳐서 해체 수준으로 바꿔 재창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로선 ‘친박계 원내대표와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밝힌 야당을 상대로 국정 수습을 위한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날 “당분간 새누리당 지도부와는 냉각기를 갖겠다고 합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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