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일반 법률문서에서는 보기 드문 다양한 수사를 동원해 가며 결백을 주장했다. 언뜻 보기에는 황당하기까지 한 박 대통령의 답변서 내용을 놓고 법조계에서는 탄핵청구가 인용돼 형사법정에 서게 될 상황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의 한 당사자로서 답변서에서 법적 책임을 피하는 내용을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사실을 과장 또는 축소하거나 정도가 지나친 주장을 펼쳐 촛불 민심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제기된다.
○ “최순실은 ‘키친 캐비닛(비공식 자문위원)’”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 의혹의 핵심인 최순실 씨(60·구속 기소)와의 관계를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이라고 답변서에서 표현했다. 부엌이라는 뜻의 키친과 내각(內閣)을 의미하는 캐비닛을 합친 말로, 미국에서 대통령이 격의 없이 조언을 듣고 의지하는 비공식 자문위원들을 가리킨다. 박 대통령은 “통상 정치인들은 연설문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지,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는지에 대해 주변에 자문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최 씨의 의견을 들은 것도 같은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직업 관료나 언론인 기준으로 작성한 문구를 국민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부 표현에 관해 주변의 의견을 청취한 것에 불과해 공무상 비밀누설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 최 씨의 의견을 듣고 국정에 반영한 것이 헌법상 대의민주주의 원칙 위반이라는 탄핵사유 반박을 위해 ‘백악관 버블(White House Bubble)’이라는 표현도 끌어왔다.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거대한 거품(버블) 속에 갇힌 채 민심과 멀어지는 상황을 일컫는 백악관 버블에 빗대 박 대통령이 최 씨의 의견을 반영한 것은 ‘거품 밖 세상’과 소통을 시도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주장에 대한 법조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탄핵을 기각해 달라는 답변서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과 법률, 상식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 “헌법·법률 위반 모두 사실 아냐”
박 대통령은 헌법·법률 위반 사항도 전면 부인했다. 최 씨가 국가 정책이나 고위 공직 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이른바 국정 농단 의혹이 사실이 아니며, 최 씨가 개인적 이익을 추구했더라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추상적 헌법 규범 위반은 탄핵 이유가 안 된다’는 헌재 실무 논리를 내세워 국민주권주의, 대의민주주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 의무 등은 탄핵 사유로 부적절하다고도 맞섰다.
차은택 씨(47·구속 기소)가 최 씨를 통해 추천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임명한 데 대해서는 “국회도 청문회를 거쳐 ‘장관 직무를 수행할 기본적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했다”고 반박했다. KT와 포스코 등 사기업 인사에 외압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를 임원으로 추천한 것을 헌법상 직업의 자유 침해로 보기는 어렵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대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요구하거나 개별 기업에 추가로 돈을 요구한 것은 ‘과거 정부에서도 해온 일’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 절차 문제도 거론…형사재판 앞둔 ‘전면 부인’ 전략
박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자체가 절차적인 문제가 있다고 공격했다. 객관적 증거 없이 검찰 공소장과 언론의 의혹 제기만 놓고 판단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박 대통령은 답변서의 처음부터 끝까지 국회의 탄핵소추 내용을 일점일획도 인정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반박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 대통령의 답변서는 헌법 이론상 문제가 있고 법감정과는 동떨어진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헌재에서 파면 결정이 내려져 형사재판에 설 경우에 대비해 ‘전면 부인’ 전략을 세워 이 같은 답변서가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8일 송년 모임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본인이 뭐라 하든지 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까 국민 뜻을 따르면 된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탄핵 이유도 없고 세월호 참사 책임도 없다니 참으로 후안무치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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