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사업가에 전화한 北파견간부 “상납 급하니 3만 리얄만 빌려주시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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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노예’ 北 해외노동자]‘SOS’ 빈번… 귀순 이어지기도
카타르 업체서 해고된 노동자도 불법체류 감행, 몰래 외화벌이


 “3만 리얄(약 1000만 원)만 빌려 주시오.”

 카타르에서 건설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A 씨는 3년 전 북한 건설사 중간 간부라는 한 남성으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지만 건설업계에서 A 씨에 대해 듣고 무작정 전화를 건 듯했다. 이 남성은 카타르 현지 업체로부터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평양에 보내야 하는 상납금을 못 채웠다고 털어놨다. A 씨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의문의 북한 남성이 대뜸 거액을 빌려 달라는 요구가 황당해 “생각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같은 남성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의 처지가 위태롭게 됐으니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이었다. A 씨는 급히 한국 정부 측에 연락을 취했고, 이 남성은 그날 밤 바로 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한동안 북한 말투의 남성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식의 협박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고 말했다.

 A 씨처럼 카타르의 한국 기업가들은 북한 건설사 간부로부터 느닷없이 돈을 빌려 달라는 전화를 종종 받는다고 한다. 전화를 거는 이들 대부분이 평양에 보낼 통치자금을 조달하는 데 문제를 겪다가 궁여지책으로 그나마 말이 통하는 한국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토록 궁박한 상황에서 카타르의 북한 건설사가 불법 사업인 밀주에 ‘다걸기(올인)’하는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카타르 정부가 5월부터 북한 신규 인력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자 북한 건설사는 기존 근무자들을 귀국시키지 않고 임기를 무기한 연기했다. 신규 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기존 비자 보유자를 최대한 묶어둬야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 근무자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자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한 달간의 방북 휴가를 줘 이들을 달랬다.

 북한 건설사는 계약 위반으로 카타르 업체로부터 해고된 북한 노동자가 불법 체류자로 남아 몰래 일하고 있는데도 이를 묵인할 만큼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지난해 9월 카타르의 한 회사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30명이 몰래 다른 현장에서 일하다 적발돼 계약 위반으로 해고됐는데 이 중 15명이 도망쳐 불법 체류자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 정부가 이들을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했지만 북한 건설사는 ‘소재를 찾을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북한 건설사가 임금 착취와 불법 밀주로 끌어모은 충성자금은 당 간부가 틈틈이 평양으로 직접 들고 간다. 이전에 한 간부가 1인당 소지 가능 액수를 초과한 거액을 들고 출국하려다 모두 압수당한 적이 있어 요즘은 노동자 일부를 자금 분산 운반책으로 동원한다고 한다.

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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