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오늘, 즉 2016년 12월 21일. ‘촛불혁명’이 한국 민주주의의 밭을 갈아엎은 이후 맞는 첫 대통령 선거의 구도가 짜여졌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 30여 명의 탈당 선언으로 조만간 ‘신(新)4당 체제’가 닻을 올린다. ‘정치는 생물’이라 단언할 순 없지만,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비박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潘, ‘비박 신당’ 합류 가능성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국내 정세에 밝은 반 총장이 ‘친박(친박근혜)당’으로 졸아든 새누리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의당? 의석이 호남에 편중돼 ‘호남당’ 색채를 벗지 못한 당과 반 총장은 정체성과 노선이 맞지 않는다. 자신의 지지율의 보루인 보수표의 균열을 감수하고 국민의당으로 갈 리 없다.
신4당 체제가 내년 상반기에 치러질 조기 대선까지 유지될지도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친박 새누리당이 내세울 대선주자가 마땅치 않다. 대선 때 쓸 만한 주자를 내세우지 못하는 ‘불임(不姙) 정당’은 지리멸렬하게 돼 있다. 보수가 ‘헤쳐 모여’하려 하면 진보에서도 야권 단일화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든 누가 됐든, 야권 제2후보가 15% 이상의 ‘의미 있는 지지율’을 얻지 못하는 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흡수될 수도 있다. 지난 대선에 이어 다시 양자 구도가 재연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대선 구도니, 이합집산이니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정치공학’이다. 여기서 4년 전 오늘로 눈을 돌려 보자. 2012년 12월 21일자 동아일보의 1면 톱기사 제목은 ‘모든 지역·성별·세대 고루 등용, 대탕평으로 갈등의 고리 끊겠다’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다음 날 대국민 인사다. 4년 전 신문을 들춰보며 나도 놀랐다. 지금은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한 박 대통령이 그때는 새 시대 희망의 상징이었다.
당시 정치부장이던 나는 ‘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라는 장기 시리즈를 기획해 다음 날부터 내보냈다. 하지만 딱 이틀 뒤. 박 대통령이 윤창중 당선인 수석대변인을 포함한 첫 인사를 발표했다.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이 정권도 실패할지 모른다’는. 그래도 그때는 몰랐다. ‘수첩 인사’로 포장됐던 대통령의 ‘황당 인사’ 시리즈의 뒤에 최순실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선 취재를 지휘했던 사람으로 참담한 일이다.
당시도 ‘박 대통령은 문고리 3인방을 통해야만 접근할 수 있고, 3인방 뒤에 정윤회가 있다’는 얘기 정도는 들렸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순실은 박 대통령의 폐쇄적인 성격을 꿰뚫어 보고 주변에 3인방이라는 장막을 세웠다. 그리고 3인방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수법으로 대통령을 독점했다. 아랫사람에게 쌀쌀한 박 대통령 대신 3인방을 챙겨준 사람이 최순실이다. 과연 3인방은 누구를 주군(主君)으로 생각했을까.
‘내 편, 네 편’ 가르다 검증 실패
박 대통령이 희망의 아이콘에서 죄인으로 전락하는 데 딱 4년이 걸렸다. 19대 대통령도 그런 전철을 밟지 말란 보장이 없다. 대선 때만 되면 온 나라가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싸워온 대한민국. 어떤 대선구도가 돼야, 어느 바람이 불어야 ‘내 편’이 승리할까에만 골몰하다 검증의 칼날이 무뎌졌던 것은 아닐까. 이번 대선은 바뀌어야 한다. 누구 편을 떠나 검증의 칼을 시퍼렇게 벼려야 한다. 그것이 한국 정치를 바꾸라는 촛불민의의 시대적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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