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어제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5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2차 청문회(7일) 때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요구서 수령을 피해 잠적했던 그는 이날 청문회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10여 가지 의혹에 대해 거의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라거나 “모른다”고 잡아뗐다. 상당 부분 의혹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으로서는 답답하고 실망스러운 청문회였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 씨를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정윤회 문건 사건 때 정 씨의 부인이라는 정도로 알았을 뿐 현재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막지 못한 책임을 추궁받자 “사전에 미리 알고 예방하고 조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미흡한 점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마지못해 답변했다. 하지만 대통령 주변에서 최 씨 등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나라를 어지럽힌 것을 마땅히 막았어야 할 그가 이 정도 소회 표명으로 직무유기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숱한 의혹 가운데 그나마 인정한 것은 2014년 6월 광주지검 세월호 수사팀이 해경을 압수수색할 때 수사팀에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검찰과 해경 두 국가기관이 현장에서 대치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를 해경 쪽에서 듣고 검찰 쪽 입장을 물은 것”이라며 상황 파악을 했을 뿐 압수수색을 못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민정비서관이 법무부 등 정식 통로를 거치지 않고 수사 중인 검찰에 직접 전화를 건 것 자체가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자신을 민정비서관으로 추천한 사람에 대해 우 전 수석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 실장이 제안하셨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이 7일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이 (우병우를) 지명하고 의사를 한번 확인하라고 해서 면담을 했다”고 말한 것과 차이가 있다. 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이 운영하는 기흥CC 직원이 “우병우를 최순실이 꽂아줬다”는 식으로 말한 녹취록이 청문회에서 공개됐으나 우 전 수석은 부인했다.
우 전 수석은 박 대통령에 대해 “항상 저한테 말씀하신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시고, 진정성을 믿어 존경한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으로서 그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지만 개인적 충성을 넘어 제 소임을 다했다면 박 대통령이 탄핵소추되는 헌정사의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여야 의원들은 우 전 수석을 다그쳤지만 언론보도 이상의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그가 의혹을 부인해도 예리하게 추궁하지 못했다. 치밀하게 답변 준비를 한 그를 상대로 호통을 치는 것만으로는 진실을 규명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우 전 수석이 최순실 게이트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이제 특검 몫이 됐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우 전 수석이 부인하지 못할 증거를 찾아 엄중하게 법적 책임을 묻고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