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가 3년 남은 전효숙 헌법재판관을 사직하게 한 뒤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하는 절차를 밟았다. 사법시험 동기인 그에게 새로 임기 6년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소장을 외부에서 데려와 재판관과 동시에 소장으로 임명하면 모르되 재판관을 사직하게 한 뒤 소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 조항을 어기는 꼼수였다. 결국 노 대통령은 103일 만에 지명을 철회했다.
▷박한철 현 소장은 헌법재판관 재직 중 소장으로 지명됐다. 헌법에는 헌법재판관의 임기만 있을 뿐 소장의 임기는 따로 없다. 그래서 박 소장은 소장 재임 기간까지 포함해 헌법재판관 6년 임기를 채우는 내년 1월 말 임기가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소장이 된 2013년 4월 임기가 새로 시작됐다고 봐서 2019년 4월 끝나는 것인지 논란이 됐다. 지명 당시 박 소장은 내년 1월 말 퇴임하겠다고 밝혀 스스로 논란을 정리했다.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 소장의 임기가 또 논란이 됐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내년 1월 말 박 소장 임기가 끝나는데 후임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질의하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본인이 임박해서 다시 의사 표명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황 권한대행과 박 소장은 사법시험 동기다. 그러나 법적 논리를 떠나 대통령 탄핵을 눈앞에 두고 박 소장이 2019년까지 자리를 계속 맡겠다고 말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제 박 소장은 내년 1월 말 퇴임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야권은 황 권한대행이 새 소장을 지명하는 데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년 1월 말까지 새 소장이 나오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소장 없이 8인의 헌법재판관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소장이라고 해봐야 결정에서는 9분의 1의 권한을 갖는 재판관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탄핵은 6명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통계적으로는 재판관 수가 줄어들수록 탄핵이 인용될 확률은 낮아진다. 야권으로서도 골치 아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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