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60)에 대해 ‘시녀 같은 사람’ ‘내 얼굴도 못 쳐다보던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최 씨가 대화를 주도하고 정책 결정까지 좌지우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널A가 입수한 박 대통령과 최 씨 등의 대화 녹음파일에 따르면 최 씨는 박 대통령 앞에서 대화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반말로 지시하고 다그치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의 말을 끊고 자신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들의 대화가 녹음된 것은 1999년 6월경으로 당시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최 씨는 유치원 부원장이었다. 최 씨가 17년 전부터 박 대통령과 관련한 여러 결정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반말로 지시하고 대화 주도
총 30여 분의 대화 중 최 씨는 6분 40초 동안 이야기했다. 박 대통령이 발언한 시간은 이의 절반도 안 되는 2분 50초였다. 최 씨는 주로 질문하며 대화를 이끌어갔고, 남성들은 이에 대답했다.
최 씨가 “이 사람들이 어떻게 짠 거야. 누가 예산 편성을 한 거야”라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한 남성은 “구미에서 예산 편성을 한 건데요. 지금 중앙정부에서 돈을 쥐고 있습니다”라며 변명하듯 대답했다. 박 대통령은 대화에서 남성들에게 높임말을 썼지만 최 씨는 반말로 질문하고 지시했다. 의제를 주도한 것도 최 씨였다. 남성들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 최 씨는 박 대통령에게 “그럼 이렇게 해서 이런 분들이 모여서 추진위원장을 뽑는 게 낫지 않아요? 그렇게는 안 하려고?”라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박 대통령에게는 “의원님”이라고 호칭하며 높임말을 썼지만 사실상 지시하는 듯한 내용도 있었다. “의원님이 그쪽으로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셔서는 안 되겠고” “여론이 더 불거지기 전에 의원님이 확실하게 결정을 하고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라는 식이었다.
박 대통령의 말을 도중에 끊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국민들이 전국적으로 지금 이렇게 모으면…”이라고 하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미 생가는 그 예산 편성되는 대로 아까 교수님들 얘기로 결정을 하고 여기 결정된 건 가져다 부지를 선정하든지”라고 말한다. ○ 박정희기념관 설립에도 깊숙이 관여
녹음파일에 나타난 대화의 주제는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건립이었다. 최 씨는 예산 규모나 조달 방식, 기념관 건립 장소와 관련해 여러 가지를 지시했다. 한 남성이 “성금도 십시일반으로 모였을 때 효과가 크다”고 하자 최 씨는 “재단법인” “국민 성금으로 이제 몇 단계에 걸쳐서 해야지”라고 말한다. 기념관 장소에 대해서도 이들은 경북 구미 생가, 경기 파주 용인시 등 여러 지역을 거론하며 어디가 좋을지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이는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정희기념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로, 1999년 박정희기념사업회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나라 예산과 국민 성금을 합쳐 2010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세워졌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도로 대기업들이 300억 원 이상을 출연했는데, 최 씨가 박 대통령과 공모해 두 재단을 설립할 때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의 돈을 받은 것과 유사하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과 최 씨 등은 박정희기념관 설계 및 디자인을 두고 미국의 링컨메모리얼과 대만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을 기린 타이베이 중정기념관에 대해 대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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